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의 수는 31.2명이다. 연간 자살자수를 1년 간의 시간으로 나누면, 매 34분마다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셈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72명으로 전체 평균의 2배가 넘는다.

노인 자살의 주요 이유는 질병(35%), 우울증(19.6%), 자녀와의 갈등(9.8%) 등으로, 노화로 인한 신체적 고통 속에 외로움과 고독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노인이 대다수이다.
그렇다면, 노인 환자는 노환을 겪으면서 병원에 입원하지만 그 병원에서의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노인환자가 병원에서 자살하거나 자살 시도가 미수에 그치는 경우, 환자나 유족들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위와 같은 환자 자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의료기관은‘'무엇을 해야함에도 하지 않았기’때문에 발생한 책임, 즉 법률용어로 ‘부작위(不作爲, Unterlassung)’의 책임을 지게 된다. 이 때, ‘부작위’는 학생을 돌볼 의무가 있는 교사가 이를 게을리하여 교내에서 학생의 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그로 인한 책임이 있는 것처럼, 법상 작위의무가 있는 자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노인 환자는 그 증상의 종류와 단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정상인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자상(自傷)이나 타해(他害)의 위험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즉, 노인 환자는 그 증상으로 인하여 자살하거나 기타 안전사고를 야기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따라서 의료기관은 당해 증상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자살과 안전사고를 방지할 보호의무까지 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하여 노인 환자가 자살한 경우, 의료기관에게 부작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다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노인 환자가 스스로 자살한 것인데, 의료기관의 책임만을 묻는다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법원은 환자의 자살 사건에서 환자 자신의 기여과실(Contributory Negligence)을 높게 평가하여, 민법상 과실상계의 법리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절반 이상 감액하는 것이 대체적인 입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환자가 투신한 경우에 유서, 목격자, CCTV 등 명백한 증거가 없는 이상 유족들이 자살이 아닌 추락사고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과실의 비율도 개별적인 사건마다 다르기 때문에, 의료기관으로서는 법원의 과실상계의 판단에 기대기보다는 환자의 자살과 이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자체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응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의료기관이 노인환자의 자살을 사전적으로 예방하고, 불가피한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감면하기 위하여, 주의를 요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인환자에게 정신병력이 있었거나, 자살을 하고 싶다는 표현, 공격, 자해 기타 일탈행위 등을 하는 경우에는 자살의 예후가 있다고 추정되므로, 담당 의료인은 의료기관의 관계자들에게 요주의가 필요함을 지시하고, 경과관찰이 이어져야 한다.
둘째, 환자의 수에 비하여 의료기관의 담당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않도록 유지하고, 노인 환자가 밧줄, 비닐 등 자살의 수단을 쉽게 확보할 수 없도록 옥상, 창고, 다용도실 등의 잠금장치의 관리에 유의하여야 한다.
셋째, 난간 또는 창문의 높이는 1.2미터 이상으로 하는 등 공법상 기준에 맞게 의료기관의 시설을 정비하고, CCTV 등 사고를 막기 위한 시설의 관리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
점차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노인환자의 증가는 필연적이다. 의료기관 역시 노인환자의 증가 속에 노인환자의 자살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점들에 주의하면서 의료기관이 각종 사고를 방지해 나간다면, 향후에 있을지 모를 자살 또는 안전사고와 관련된 손해배상 분쟁에 있어서도 의료기관이 부담한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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