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자가 내분비의학 분야에서 ‘K-연구’의 위상을 높이고 있어 화제다.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하정훈 교수가 최근 미국내분비학회 산하 골대사위원회의 Steering Committee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하 교수는, 아시아 지역 대표로서 다양한 임상 경험과 연구 성과 교류를 통해 더 많은 국내 연구자들이 글로벌 연구에 참여할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다.
국내 연구자들의 글로벌 연구 참여 교두보 될 것
“세계적으로 가장 전통적이고 권위 있는 내분비 관련 학회에서 활동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국내 및 아시아의 골대사 관련 임상 상황과 연구를 알리고 더 많은 국내 연구자들이 세계 학회에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겠습니다.”
미국내분비학회(Endocrine Society)는 전 세계 내분비질환과 대사질환 연구를 선도하는 권위 있는 학술 단체로, 산하 골대사위원회는 골다공증을 비롯한 뼈와 무기질 대사 이상에 대한 최신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하 교수는 미국내분비학회에 대해 “세계의 모든 내분비 질환 관련 치료 기준을 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며 “학회 산하 위원회의 위원 선발 기준도 꽤 까다로운 편이라 연구 업적이나 영향력을 평가 받고 소속 위원들의 투표를 통해 위원으로 합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하 교수는 아시아 지역 대표로서 다양한 임상 경험과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교육 프로그램 기획, 공동연구 기회 발굴 등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위원 위촉은 글로벌 골대사 연구 네트워크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하 교수는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대한 연구 신뢰도는 높지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 한국의 많은 양질의 연구들이 일본, 중국 보다도 주목받고 있다”면서, “특히 골다공증 약제는 인종간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단일 인종인 우리나라의 연구 결과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위원회에 참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문을 두드려 왔다는 하 교수. “우리나라의 연구진들은 매우 훌륭한데도, 기존 이너서클의 문이 단단해서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다”며 “당뇨병은 연구자가 많지만 골대사 분야는 중요도에 비해 세계적으로 연구자가 많지 않아서 한국의 골대사 연구를 알리기 위해 매년 위원을 뽑을때마다 도전했다”는 것.
실제 하 교수는 이를 위해 Stanford University 등과 공동연구를 통해 글로벌 협력을 확대해 왔으며, 이런 국제 연구 활동이 이번 위촉의 기반이 됐다.
그는 “실제 부딪혀보니 K-문화 열풍을 타고 한국 사람이나 연구에 대한 관심도 높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아무리 연구가 훌륭해도 국제적 콜라보가 없으면 무시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국제적 협업을 연결 시켜 주는 중간 역할을 통해 국내 뛰어난 연구자들이 세계적으로 참여하는 토대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환자 삶의 질 높이는 실용적 임상연구에 주력해 와
하 교수는 그동안 골다공증과 골대사 질환을 주제로 다양한 임상 및 중개연구를 수행하며 국내외에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왔다. 특히 조혈계 지표와 골대사 간의 연관성, 알코올에 의한 골질 저하, 근육-골 간 상호작용(muscle-bone crosstalk) 등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토대로 관련 논문들을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발표했다.
그동안 진행해 온 연구에 대해 하 교수는 “임상가로서 실제 임상 적용을 통해 환자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주제들에 흥미를 갖고 연구를 해 왔다”며 “예를 들면 일반적 약제 효과에서 나아가 대상을 세분화하여 암 환자들에서의 효과 차이를 비롯해 인종간, 성별간 효과 차이 등 실용적인 임상연구를 많이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위암 환자들의 골다공증 치료 시기에 대한 연구를 꼽는다. 위암 환자는 위 절제후 칼슘 흡수가 잘 되지 않아서 뼈가 약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데이터는 많지 않은 편이다. 이에 위암 환자를 두 군으로 나눠 수술후 바로 골다공증 약제를 투여한 군에서 골절 위험이 낮아진다는 것을 증명한 것.
그는 “이러한 연구들의 종착지는 진료 가이드라인”이라며 “권고 수준을 정할 때 양질의 가이드라인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자 흥미”라고. 특히 “미국 내분비학회가 세계적인 가이드라인을 주도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위암 수술 환자에게 조기에 골다공증 약제를 써야 한다는 것을 세계적인 가이드라인에 넣는 것이 꿈”이라고 전했다.
실제 하 교수는 대한의학회 발행 ‘골다공증 진료지침’에 저자로 참여해 골다공증 초고위험군 분류 기준의 국내 도입 과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똑같은 골밀도라도 최근 골절이 있었거나, 스테로이드 복용이나 항암치료를 받은 사람,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나 마른 사람들은 골절이 더 잘 생긴다”며 “이러한 초위험군을 찾아서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교육하여 골절 위험을 낮추는 게 최근 치료의 추세”라는 것. 특히 “최근 초위험군 골절 예방에 효과가 좋은 약제가 등장했으므로, 더 적극적으로 골절을 막아서 환자들이 건강하게 여생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임상가로서 큰 보람”이라고 전했다.
내분비내과, 진료‧연구 매우 다양한 매력적인 분야
“내분비 분야는 매우 다양하고 연구할 부분도 무궁무진합니다. 내분비내과 지원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이러한 내분비내과의 강점을 알리고 전문분야를 확고히 다져 나간다면 후학들이 도전하고 싶은 매우 매력적인 분야라고 확신합니다.”
내분비내과는 보상이 상대적으로 적은 과라는 인식 때문에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한내분비학회는 후학 육성을 목표로 ‘미래위원회’를 설립하고, 하 교수가 초대 이사를 맡기도 했었다.
실제 인구 고령화로 내분비 질환의 수요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학회에서도 다양한 특화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성소수자 진료 분야를 꼽는 하 교수. “트렌스젠더의 경우 성호르몬을 평생 복용하다 보니 만성질환 발생 등 장기적인 부작용을 많이 겪는다”며 “아직 그런 환자들이 음지에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라며, 내분비학회에서도 다양성위원회를 조직해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는 것. 다양성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하 교수는 서울성모병원에서도 ‘젠더친화 클리닉’을 만들어 그 첫발을 떼고 있다.
세계적인 연구 무대에 진출하여 K-의료의 저력을 전파하는 한편, 국내 내분비내과 후학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있는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