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문장 동방봉용 변호사
법무법인 문장 동방봉용 변호사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환자와 의료인 사이에 분쟁이 생긴다. 환자는 의료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을 이유로 형사고소를 하기도 한다. 손해배상청구와 형사고소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간혹 형사에서 혐의 없음 처분을 받거나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는데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되었다며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다. 특히, 수사기관에서 혐의 없음 처분 또는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는데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았다며 억울해 하는 분들이 있다.

민사소송의 결과와 형사소송에서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먼저, 민사소송의 목적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다. 민사소송은 다투는 양당사자(원고와 피고)가 있고, 각 당사자의 공방을 통해 분쟁을 해결한다. 반면에 형사소송의 목적은 범죄에 대한 정당한 절차를 거쳐 국가의 정당한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소송의 목적은 입증책임과 입증의 정도에서 차이가 난다. 분쟁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민사소송절차에서는 원칙적으로 주장을 하는 자가 그 주장을 입증해야 하고, 증명의 정도는 법관에게 ‘그 정도면 인정할 수 있겠다’는 개연성을 갖게 하면 된다. 반면에 형사소송절차는 검사가 범죄행위에 대한 엄격한 입증을 해야 하며, 그 입증의 정도는 법관에게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 형사소송절차에서는 엄격한 증명을 요하며, 그 증거는 합법적으로 수집된 것이어야 한다.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도 위와 같은 법리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어깨 관절경 수술을 하러 병원을 찾았던 70대 환자가 마취 직후 심정지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기관은 이를 업무상과실치사혐의로 기소하였다. 1심 형사법원에서는 의료진의 과실에 대한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2심 형사법원에서는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인정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의료진의 과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 과실로 인하여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에 관하여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취지로 사건을 2심 법원으로 환송하였다.

반면, 위 사례의 민사소송에서는 1심과 2심 모두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여 손해배상을 명하였고, 대법원 역시 이를 수긍하여 1억여원의 배상판결을 확정하였다.

언뜻 보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앞서 본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차이를 이해하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은 형사소송에서 엄격한 증명을 요하여 업무상 과실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민사소송에서는 이를 완화하여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특히, 민사소송은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분담을 지도 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을 기초로 증명책임을 완화하기도 한다.

여전히 일반인이 위와 같은 법리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민사소송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절차이고, 형사소송은 범죄행위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정당한 행사를 목적으로 하는 절차라는 점을 이해하면 보다 쉬울 것이다. 분쟁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민사소송에서는 ‘최선의 판결보다는 최악의 조정이 낫다’는 말이 있다. 반면에 형벌권을 행사하는 형사소송에서는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격언이 있다.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가 한 명의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면 안 된다. 이것이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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