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문장 임원택 변호사
법무법인 문장 임원택 변호사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위탁진료계약을 체결하고 진료업무를 수행한 의사도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에 따르면 소속 의료기관의 운영을 맡기기 위하여 의사를 채용한 특수법인의 사용자도 근로기준법 등에서 정하는 사용자로서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법원은 2023. 9. 21.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대표자인 갑이 의사 을과 ‘2년 동안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매월 보수를 받는다.’는 내용의 위탁진료계약을 체결하였음에도 을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여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무죄 취지의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갑은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대표자로서 A의원을 개설하여 운영하다가 2017. 8. 1. 을과 2019. 7. 31.까지 A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매월 600만 원을 받되, ‘을은 근로자가 아니므로 노동관계법과 관련한 부당한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포함된 위탁진료계약을 체결하였다. 을은 A의원의 유일한 의사로 정해진 시간·일에 근무하였고, 근무장소도 진료실(원장실)로 특정되어 있었다.

법원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한다(대법원 2010. 4. 15. 선고 2009다99396 판결 등 참조).

위 사건에서 항소심 법원은 위탁계약서에 ‘근로자가 아니므로 노동관계법과 관련한 부당한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기재가 명백히 되어 있고, 을에 대한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을은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실제로 을은 다른 직원들과 달리 지문인식기를 통해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지 않았고, 직원회의에도 참석하지 아니하였으며,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어려울 때는 협의하여 보수를 조정하거나 지급기일을 연기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을이 진료업무 수행 과정에서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지는 않은 것은 의사의 진료업무 특성에 따른 것이라고 하면서 근로자성을 판단할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위탁진료계약이라는 계약형식보다는 정해진 시간 동안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대가를 고정적으로 지급하였다는 내용을 볼 때 근로자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이번 판결은 의료기관의 운영을 위탁받은 의료인의 근로자성에 관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업무의 독립성이 인정되는 의사라 하더라도 임금을 목적으로 한 종속적 관계에 있으면 근로자에 해당한다. 의사를 데리고 와서 소속 의료기관의 운영을 맡기려는 의료법인은 애초 의도와 달리 사용자로서 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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