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효과를 높인 면역항암제 기반의 간암 치료법들이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환자와 의료진들이 거는 기대도 커지고 있는 상황. 하지만 실질적으로 면역항암제 치료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자는 여전히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면역항암제에 좋은 치료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의 수가 아직 1/3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
이로 인해 임상계에서는 면역항암제의 반응률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ASCO 2023에서 티쎈트릭+아바스틴 병용요법(이하 티쎈+아바)의 반응률을 향상시킨 '티라골루맙' 임상 1/2상 결과가 발표되면서 의료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본지는 분당차병원 종양내과 전홍재 교수를 만나 면역항암제 반응률의 중요성과 티라골루맙의 효과에 대해 들어봤다.
면역항암제 반응률, 환자 장기 치료의 척도
현재 티쎈+아바는 우수한 치료 효과로 간암 치료의 표준요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다면 티쎈+아바로 치료를 시작한 환자들이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티쎈+아바의 가장 많은 환자 치료 데이터를 보유한 분당차병원에서는 최근 티쎈+아바로 치료를 받은 182명의 환자들 대상으로 2년 장기 치료 효과에 대한 분석을 시행했다. 그 결과 티쎈+아바 치료를 시작한 환자 중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47.8%(87명)의 환자만이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았고, 티쎈+아바의 보험 급여 적용 기간인 2년 동안 치료를 모두 마친 환자는 17%(31명)에 불과했다.
반면, 182명의 환자들 중 티쎈+아바에 치료 반응을 보인 환자 61명을 대상으로 치료 기간을 확인해 본 결과 90.2%(55명)의 환자들이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았고, 2년 동안 치료를 마친 환자도 45.9%(28명)에 달했다.
이에 대해 분석을 진행한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전홍재 교수는 "간암 치료에 있어 티쎈+아바는 현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표준 치료법이지만, 치료를 시작한 환자의 절반은 여전히 6개월 치료도 마치지 못하고 있었다"고 얘기하며 "이번 연구를 통해 2년간의 티쎈+아바 치료를 마칠 수 있는 환자 비율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치료 반응률 자체를 높이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30%에 불과한 반응률을 높인다면 더 많은 환자들이 장기 치료가 가능해질 뿐더러, 종양이 모두 소실되는 완전관해(Complete response, CR)에 이르는 비율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는 "실제로 의료계에서도 치료 예후가 좋은 환자를 늘리기 위해 면역항암제 반응률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수의 임상 연구들이 현재 진행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TIGIT 억제제 '티라골루맙', 티쎈+아바 반응률 향상 시켜
간암 치료에서 면역항암제 반응률 향상에 사용된 다양한 약물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티라골루맙'이다. 티라골루맙은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를 반감 시키는 면역 억제 물질 중 하나인 TIGIT을 억제하는 기전의 치료제다.
TIGIT은 우리 몸의 면역을 억제시키는 면역세포인 Treg에서 많이 발현되고 있는데, 티쎈+아바의 3상 임상인 IMbrave150 연구의 하위 분석 결과, Treg 유무에 따라 간암 환자들의 치료 예후에 큰 차이를 보였다. Treg 발현이 높은 환자에서는 티쎈+아바의 치료 효과와 대조군인 넥사바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Treg 발현이 낮은 환자들에서는 HR이 0.24에 달할 정도로 티쎈+아바의 치료 효과가 높게 나타났다.
이에 로슈에서는 티쎈+아바에 티라골루맙을 추가한 MORPHEUS-liver 1/2상 연구를 진행, 지난 ASCO 2023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 티라골루맙 3제요법의 객관적 반응률(ORR)은 42.5%로 대조군인 티쎈+아바 투여군(11.1%) 대비 4배 가까이 높았고,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 역시 티라골루맙 3제요법군(11.1개월)이 티쎈+아바군(4.2개월)에 비해 길게 나타났다. 특히 티라골루맙 투여군 가운데 병이 진행된(PD, Progressive disease) 환자는 7.5%에 불과했다.
전홍재 교수는 "MORPHEUS-liver 연구는 초기 임상인 만큼 참여한 환자 수도 적고 양 군간의 밸런스가 맞지 않기 때문에 이 결과 값이 약제의 치료 효과를 100% 대변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티라골루맙 투여군에 혈관침범이나 간외전이, 간문맥침범 등 예후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들이 더 많이 포함이 되었음에도 42%라는 놀라운 반응률을 보였다는 점은 TIGIT 억제제가 간암 환자들의 면역항암제 반응률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이어 "IMbrave150 연구를 보더라도 티쎈+아바의 반응률은 30%였으며, PFS는 6.9개월이었다. 이러한 데이터랑 비교해 보더라도 MORPHEUS-liver 연구에서 보여준 티라골루맙의 효과는 월등히 좋은 결과"라며 "무엇보다 티라골루맙을 추가하더라도 티쎈+아바군과 독성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결과에 자신감을 얻어서일까. 로슈는 이달초부터 티쎈+아바에 티라골루맙을 추가한 3상 임상 연구를 시작했다. 이번 연구는 치료 경험이 없는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간세포암종 환자들을 대상으로 티쎈+아바군과 티쎈+아바+티라골루맙군을 비교하는 무작위 이중맹검 위약 대조 임상시험이다. 국내에서는 분당차병원을 비롯하여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울산대병원, 화순전남대병원 등 8개 기관에서 시행한다.
전 교수는 "이미 1/2상에서 티라골루맙의 안전성과 효과가 확인된 만큼 3상 임상에서도 좋은 결과가 재현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대조군에 배정이 되더라도 표준 치료인 티쎈+아바를 투여하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도 상당히 좋은 치료 기회가 될 것이라고.
그는 "만약 3상에서도 뛰어난 치료 효과를 보인다면 간암의 표준 치료는 다시 한번 바뀌게 될 것"이라며 "이 외에도 티라골루맙 3중 병합 치료는 이르면 올 연말부터 간암의 수술전 치료요법에서도 재발 위험이 높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