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체계를 손상시켜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를 일으키는 원인 병원체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HIV는 억제할 수 있는 치료제들이 다수 등장했음에도 불구, 아직까지 완치 가능한 약제가 없어 예방에 대한 중요성이 꾸준히 강조되고 있다. 

이에 이미 다수의 국가들은 HIV 예방요법(PrEP; 노출 전 위험 감소 요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추세다. PrEP은 MSM(Men who have sex with men)이나 HIV 감염인 파트너를 둔 사람과 같은,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이 사전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HIV에 노출 시 바이러스의 세포 내 증식을 막아주는 예방법이다.

PrEP은 여러 건의 대규모 임상연구(iPrEX, Partners PrEP 등)에서 매일 꾸준히 복용할 경우 HIV 감염 위험을 90% 이상 줄일 수 있음이 입증된 바 있다. 이에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를 포함한 9개국에서는 PrEP을 적용, 신규 HIV 감염 건수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PrEP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매년 1천명 가량의 신규 HIV 감염 사례가 보고되는 등 신규 감염자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한 해 국내 신규 HIV 감염인은 1,222명으로, 현재까지 국내 누적 감염인은 1만 3천명을 넘어섰다. 특히 OECD 회원국 중 신규 감염률이 증가하고 있는 국가로는 대한민국과 칠레 두 곳 뿐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PrEP 요법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제한적인 급여 기준을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실제 PrEP 요법의 국내 급여기준은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로 한정되어 있어, MSM과 같은 고위험군도 비용 부담으로 인해 PrEP 요법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본지는 MSM 그룹을 대상으로 PrEP 요법 연구를 진행한 연세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최준용 교수를 만나 PrEP 요법의 효용성과 급여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가졌다.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최준용 교수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최준용 교수

Q: 2019년 국내에서 PrEP 요법이 첫 급여 인정을 받고 약 4년이 지났다. PrEP의 급여 대상이 확대된다면 정부 차원에서 재정 부담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더 적극적인 예방요법이 비용효과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A: PrEP(노출 전 위험 감소 요법)이 HIV 감염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해외의 경우 여러 나라에서 PrEP을 적극 도입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PrEP이 HIV 예방을 위한 중요한 전략이라며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국내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PrEP의 비용효과성을 분석하기 위한 모델링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연구 결과 국내에서 HIV 감염 고위험군이라고 알려져 있는 MSM 그룹에게 PrEP을 보급하는 것이 비용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외에서도 PrEP의 비용효과성을 분석한 논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의 연구에서 PrEP이 비용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신규 HIV 감염인의 치료 비용과 PrEP을 통한 HIV 예방 비용을 비교해서 어느 접근이 더 비용효과적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일단 HIV 감염되면 감염 치료에 지출되는 비용이 막대하다. 또한 신규 HIV 감염인의 삶의 질 저하 등 다양한 질병 부담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PrEP을 통해 HIV를 적극 예방하는 것이 HIV 치료보다 오히려 더 비용효과적이라고 본다.


Q: 국내 신규 HIV 감염인 추이를 봤을 때 현시점에서 필요한 HIV 예방 정책은 무엇인가?

A: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국내 신규 HIV 감염인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이후에는 신규 감염인 증가폭이 감소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신규 HIV 감염이 감소하기보다는 HIV 진단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던 보건소가 코로나19 진단 관리에 역량이 집중되면서 HIV 진단 수 자체가 감소했다고 보는 게 맞다. 코로나19 이전 시기를 보면 HIV 감염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기 때문에 지금도 아마 신규 감염인은 실질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일 것으로 추정된다. 

HIV 예방 차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로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서 시행한 ’95-95-95캠페인’이 있다. 첫 번째 95는 HIV 감염인의 95% 이상을 진단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 95는 진단된 HIV 감염인의 95% 이상을 치료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 95는 치료받고 있는 HIV 감염인의 95% 이상에서 바이러스를 완전히 억제하자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목표 중에 첫 번째 95인 HIV 진단이 가장 달성되지 않고 있다. 진단받지 않은 사람을 진단하겠다는 목표를 국내에서는 잘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전체 HIV 감염인 중 몇 퍼센트가 실제로 진단받았는지를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과학적 접근법을 통해 추정해보면 HIV 진단율은 70%를 밑도는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진단율을 95% 이상으로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Q: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면서 HIV 감염인과 고위험군이 의료적 사각지대를 경험하고 있을 것 같다. 의료 현장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처한 어려움에는 어떤 것이 있나?

A: HIV 치료는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지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 번 치료제 복용이 끊기면 바이러스가 다시 증식하면서 환자 상태가 나빠지고 전파력도 그만큼 강해진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내원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치료가 중간에 끊긴 감염인이나 고위험군이 있었다. 그리고 보건소 역량이 코로나19에 집중되다 보니 보건소에서 맡고 있던 HIV 진단 기능이 많이 축소된 듯하고 진단 검사 건수 자체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도 HIV 치료나 PrEP에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나라들은 자국 내 여행도 락다운(lock down) 된 곳도 있는데 그런 나라에서는 HIV 감염인들의 치료가 잘 이어지지 않아 굉장히 큰 문제가 됐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 여행 자체가 금지된 중국은 치료를 위해서 여행 수준의 장거리 이동이 필요한데, 지역 간 이동 자체가 봉쇄되다 보니 치료가 중단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원격의료(telemedicine) 도입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해외와 비교했을 때 코로나19 영향이 비교적 크진 않았으나 영향이 아예 없다고 보긴 어렵다. PrEP은 예방법이라 치료와 같은 아주 필수적인 의료 행위와는 다르다. PrEP이 급여 적용 이후 계속 확대 정착되고 제도화됐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의료 현장에서 보기에 고위험군에서 HIV 예방에 대한 니즈는 확실히 있어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PrEP을 위한 내원 비율이 크게 줄고 있으며 PrEP 확대가 정체되는 것 같다.


Q: 전반적인 HIV 감염 관리 차원에서 볼 때,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 영역도 중요할 것 같다. PrEP을 통한 HIV 예방 목표는 무엇인가?

A: 사실 감염되지 않은 고위험군에게 시행되는 PrEP의 목표를 수치화해서 제시하기는 어렵다. 다만 90% 이상의 고위험군에게 PrEP을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해당 목표가 달성된다면 신규 HIV 감염 발생은 2030-2040년 시점에 0%에 가까운 수준으로 줄어 이른바 ‘에이즈 팬데믹(AIDS Pandemic)’의 극복까지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이즈 글로벌 팬데믹의 완전 극복은 기존의 HIV 감염인이 꾸준히 치료받으며 생존하고 신규 감염인은 거의 없는 상황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방향을 HIV 고위험군의 예방을 포함한 전반적인 HIV 감염 관리 목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Q: PrEP 외에 HIV 예방법에는 무엇이 있나?

A: 과거에 주로 사용되던 전통적 HIV 예방법으로는 콘돔 사용이 대표적이다. 비교적 최근에는 ‘치료가 곧 예방(Treatment as Prevention)’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조기 치료를 통해 감염을 예방하는 것이다. HIV 감염인이라도 HIV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게 되면 더 이상 HIV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HIV 노출 전 예방요법 개념으로 PrEP이 HIV 예방의 한 축을 담당해오고 있으며, HIV 노출 후 예방요법(Post-exposure prophylaxis, PEP) 개념도 있다. 이는 HIV 바이러스에 노출된 다음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예방적으로 사용하는 예방법이다. 이외에도 성병 치료나 포경 수술 등이 HIV 예방에 효과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Q: 지난 11월 19일에 개최된 대한에이즈학회 학술대회에서 국내 HIV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진행한 PrEP 연구의 중간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 중간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A: 국내 동성애 남성 100명 정도를 연구 대상자로 모집해서 PrEP을 처방하고 연구 대상자의 복약 순응도와 이상반응 발현 정도, 약물 농도 유지 정도, 성 행동 변화 여부 등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작년 기준으로 확인된 데이터를 예비 분석해서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예비 분석해본 결과, PrEP으로 인한 이상반응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했다. PrEP 복용 대상자 중 심각한 이상반응을 보인 케이스는 없었다. 복용 도중 HIV 감염이 발생했던 케이스도 없었다. 복용 전 스크리닝(Screening) 검사를 통해 HIV 감염이 확인돼 PrEP을 지속하지 못했던 분은 한 명 정도 있었지만 이를 계기로 일찍 진단받게 된 것은 이점으로 보인다.

복약 순응도는 대부분 잘 유지가 됐고 약물 농도도 대체로 높게 유지됐다. 다만 일부에게는 약물 농도가 잘 유지되지 않기도 했으나 비중이 적었다. 성행위 변화 관련해서도 성병 발생이나 콘돔 사용 여부에 있어서도 중간 결과 시점까지 문제가 될 정도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당 결과는 중간 결과이고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좀 더 추적 관찰을 해봐야 더 명확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Q: 일각에서는 PrEP이 고위험군의 무분별한 성생활을 만연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A: PrEP을 시행함으로써 오히려 다른 매독, 임질 등의 성병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PrEP을 복용하는 고위험군은 PrEP의 예방 효과로 인해 자신이 HIV로부터 보호받는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 콘돔 사용률이 떨어지고 성관계 파트너수가 증가하거나 성병 위험이 증가할 것이라는 내용의 우려가 있었다.

이런 우려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PrEP에 따른 고위험군의 성행동 변화에 관한 여러 임상연구와 리얼월드 데이터 분석이 진행된 바 있다. 각 연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일부 사회에서는 PrEP으로 인해 고위험 성행위가 증가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PrEP으로 인한 고위험 성행위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결과가 더 많이 발표됐다. PrEP으로 인한 고위험 성행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자료가 상대적으로 많다. 관련해 초기에 진행됐던 연구 결과에서도 PrEP 복용군과 위약군을 비교했을 때 두 군에서 모두 성병 발생률이나 콘돔 사용률에 큰 차이나 변화가 없었다.

이후 진행됐던 후속 연구들 중에는 연구 대상자가 본인이 PrEP 복용군인지, 위약군인지 알고 배정된 오픈라벨(Open label) 연구도 있었다. 해당 연구 결과에서도 PrEP 복용군은 본인이 PrEP을 통해 HIV 예방 효과를 얻고 있음을 인지해도 고위험 성행위가 특별히 늘어나지 않는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PrEP이 고위험군의 고위험 성행위 증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전한다.


Q: 현재 국내에서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가 PrEP을 처방받는 절차가 궁금하다. 또 PrEP 비용은 원내 처방과 원외 처방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린다.

A: 현재 국내에서 PrEP 적응증을 가지고 있는 치료제는 길리어드의 ‘트루바다(성분명 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가 유일하다. ‘트루바다’는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인 비감염인에게 보험 급여가 인정되고 있다. 만약 HIV 감염인의 비감염인 파트너가 PrEP을 원한다면 내원해 처방받으면 된다. PrEP의 처방은 보통 3개월 주기로 HIV 검사 및 혈액 검사 등을 진행해 중간 시점에 HIV 감염 여부나 이상반응 발생을 확인하며 처방하고 있다.

PrEP도 다른 치료와 마찬가지로 본인 부담금이 있는데 원내 처방과 원외 처방에 따라 본인 부담금에 차이가 있다. 보험급여가 인정되는 경우 원내 처방은 본인 부담금이 60% 원외 처방은 본인 부담금이 30%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료지원재단이 올 1월부터 HIV 감염 고위험 대상PrEP 처방 본인 부담금의 50%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했다. 무한정 지속되는 프로그램은 아니고, 예산 소진 시기까지는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다. 1인당 지원기간은 6개월로 소급적용은 불가하지만 PrEP을 처방받는 사람에게 실제 본인 부담금의 50%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경제적 부담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비감염인이 본인이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임을 증명해 고위험군으로서 보험 급여를 적용 받으면 1일 1회 복용 시 원내 처방 한 달 약가는 약 24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원외 처방 약가는 약 12만 원 선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료지원재단은 급여나 비급여에 관계없이 약제비의 절반을 지원해준다.


Q: PrEP의 원내, 원외 처방 비율이 어느 정도 차이 나는가? 

A: 처방전을 병원에서 받아 약국에서 약을 받는 원외 처방이 비용 면에서 더 경제적이긴 하지만, PrEP에 사용된 트루바다를 비치한 약국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 거의 대부분은 원내 처방될 것으로 예상된다. 약국에 처방전을 토대로 해당 치료제를 비치해달라고 사전에 요청하면 원외 처방도 가능하겠으나, 아직까지는 약국 중 PrEP 목적으로 처방되는 트루바다를 비치한 약국은 별로 없는 것 같다.


Q: 미국, 대만 등에서는 PrEP 관련 대규모 임상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임상 연구 결과가 궁금하다. 또 PrEP 관련 정책 제도에 있어 국내에 차용할 만한 긍정적인 해외 사례가 있다면?

A: PrEP에 관한 연구는 여러 나라에서 굉장히 많이 진행되어 왔다. 초기 임상연구에서는 PrEP의 예방 효과가 약 50% 수준이었는데, 비교적 최근 후속 분석에서는 복약을 잘 유지하면 90% 수준까지 예방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즉, PrEP의 예방 효과는 복약 지속이 관건이다. 복용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예방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 PrEP을 복용하는 사람은 매일 주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HIV 감염을 90% 이상 예방할 수 있다.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하더라도 PrEP을 주기적으로 복용하면 HIV 감염을 90% 이상 예방할 수 있다고 보고되기도 했다.

PrEP 관련 정책 제도에 있어 대만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대만 질병관리통제센터에서는 센터 주도 하에 PrEP을 자국 내 널리 보급하는 정책을 굉장히 강하게 펼쳤다. 정책 초기에 예비 연구와 본 사업 연구까지 철저하게 진행해 PrEP에 관한 적극적 지침도 개발해 보급하는 등 많은 예산을 투입했고, PrEP 정책에 많은 노력을 이어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대만 사례를 참고해 PrEP 관련 정책을 개선해야 할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PrEP의 보험 급여 적용 대상 확대다. 앞서 설명한 대로 현재 국내에서는 HIV 감염인의 비감염인 성관계 파트너에게만 급여가 적용되고 이외 대상에게는 급여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HIV 감염인의 파트너보다 이외 대상에게 급여 처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HIV 감염인이 이미 치료를 받고 있다면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는 사실상 감염이 크게 우려되지 않는다. 따라서 HIV 감염인과의 성관계 접촉 여부를 알 수 없거나 고위험 성행위를 하는 다수의 대상에게 PrEP을 급여 처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 정책상 제일 중요한 대상에게 급여 처방이 안되고 있어 제한이 많은 실정이며 이런 부분이 어서 해소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다수의 고위험군에게 PrEP을 급여 처방할 수 있도록 별도의 예산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정적인 건강보험 재정의 우려를 해소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PrEP을 처방할 수 있도록 예산 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Q: HIV 감염이나 에이즈가 만성질환 범주에 속할 정도로 치료 및 관리의 질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고위험군은 본인의 성관계 파트너가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꺼려져 PrEP을 급여 처방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두 가지 중요한 이슈가 섞여 있는 질문이다. 우선 HIV 감염, 에이즈,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은 HIV 감염 예방의 가장 큰 걸림돌이자 숙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에이즈나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굉장히 강하다. 낙인 지표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낙인과 편견이 훨씬 심한 나라에 속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HIV 감염인이나 고위험군이 HIV 검사와 진단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HIV 검사를 통해 진단되는 순간 본인이 사회로부터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 PrEP 급여 조건도 문제다. 현재 PrEP을 급여 처방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HIV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라는 점을 진료 단계에서 언급해 증명해야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심하기 때문에 실제로 내원해서 의료진에게 본인이 고위험군이라고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부분을 고려했을 때 현 PrEP 급여 조건은 현실이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HIV 또는 PrEP에 관한 급여 정책에 있어서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부분도 있다고 본다. HIV 치료 및 감염 예방을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그런 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자궁경부암, 대상포진 등의 예방 목적으로 사용되는 고가의 백신에는 현재 국내에서 급여 적용이 안되고 있다. 보험 급여 정책은 예방 의료보다 직접적인 치료에 집중되어 설계됐다. 결국 PrEP도 예방의 영역이기 때문에 보험 재정을 투입해야 하느냐가 사실 큰 이슈이다. 특히 PrEP 처방이 필요한 대상이 국내에서는 사회적으로 잘 인정되지 않는 그룹이기에 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PrEP은 임상적 근거가 뚜렷하고 비용효과성이 입증됐기 때문에 보험 재정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도 예방 목적에 건강보험 재정 사용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만약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대만 사례처럼 건강보험이 아닌 별도의 예산을 조성해 PrEP이 경제적 부담이 적은 선에서 널리 보급되면 좋겠다. 이런 예산 조성 사례는 국내에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인플루엔자 백신 사업, 코로나19 백신 사업 등도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사례들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HIV 감염이나 에이즈 확산이 단순히 성소수자, 동성애에 국한된 이슈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동성애 남성에게 HIV 유행이 확산되면 결국 이성애자도 HIV 감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HIV를 예방하는데 힘써 HIV 확산을 막는 것이 재정적, 사회적 비용이 더 절감된다는 점도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HIV 감염인과 고위험군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HIV 감염인께 늘 드리는 말씀은 HIV 감염은 더 이상 예후가 안 좋은 과거의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HIV 감염은 감염인 본인이 치료만 꾸준히 이어간다면 본인의 수명대로 건강하게 여생을 살아갈 수 있는 만성질환의 범주에 속하게 됐다. 이런 점은 이미 HIV 감염인들도 잘 인지하고 있다. ‘U=U(Undetectable=Untransmissible)’라는 치료 개념도 말씀드리고 싶다. U=U는 HIV 치료를 잘 받아서 혈액검사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정도면, HIV의 전염력은 0%다’라는 뜻이다. U=U는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하더라도 HIV가 전파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이미 학계에서는 정설로 통하고 있다. 따라서 의지를 잃지 말고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시길 바란다. 

고위험군에게는 PrEP을 권고 드린다. HIV 감염 및 에이즈 예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 중 하나가 PrEP이다. 다만 HIV 감염 치료를 받고 있고, 예방을 위해 PrEP을 복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관계 시 콘돔은 꼭 사용해야 한다. PrEP은 HIV를 예방하는 것이지, 성병을 막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PrEP을 하더라도 콘돔은 필수적으로 사용하시라고 권한다. 또한 PrEP의 HIV 예방 효과는 100%가 아니다. 꾸준히 복용했을 때 90% 수준의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복용을 거르게 되면 예방 효과가 40%까지 떨어지거나 효과가 없어질 수도 있다. PrEP을 복용하기로 결정하셨다면 꾸준히 잘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HIV 검사를 주기적으로 하시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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