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인한 국내 남녀 사망율 1위 '폐암'. 다른 암 종에 비해 특이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려워 약물 치료가 환자 생존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암 종이다. 이 때문일까. 최근 10여년 새 폐암 치료제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향상된 치료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에 본지는 '폐암 특집호'를 기획,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폐암분과 안명주 위원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를 만나 폐암 치료의 발전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다양한 약제 등장으로 '생존율 UP'

폐암 치료는 2000년대 초반 비소세포폐암에서 EGFR 유전자 돌연변이에 대한 표적치료제 개발을 필두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개발에 성공한 다양한 약제들의 잇따른 등장으로 환자마다 적합한 약물 치료가 가능해졌고, 치료율도 향상된 것.

안명주 위원장은 "과거와 달리 현재 폐암은 다양한 치료 약물들의 등장으로 환자 맞춤 치료가 가능해지고 있다"며 "이제 폐암은 하나의 질환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암 유전자 돌연변이에 따라 여러가지 종류의 질환으로 구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EGFR, ALK, ROS1, B-RAF 등의 유전자 돌연변이에 따른 다양한 표적치료제들이 이미 허가 및 급여를 받으면서 돌연변이 유형에 맞는 개인맞춤 치료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상황이다.

표적치료제가 폐암 치료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면, 최근 면역항암제의 등장은 폐암 치료 패러다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없는 비소세포폐암 뿐 아니라, 소세포폐암에서도 처음으로 면역치료 후 생존율의 향상을 입증하며 진일보한 치료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

안 위원장은 "전체 폐암의 10~15%를 차지하고 있는 소세포폐암은 근 30년 동안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어 백금 기반 복합화학항암요법에 의존해야 했다"라며 “하지만 최근에는 면역항암제가 소세포폐암 치료에 사용되면서 환자들의 생존기간이 길어지는가 하면, 사망률도 약 30% 감소하는 등 향상된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제 발전 속, "내성·마커는 해결해야 할 숙제"

폐암 치료제들의 발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선 개발이 완료된 면역항암제와 표적치료제들은 임상 연구를 통해 점차 치료 영역을 넓혀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주로 폐암 3B기나 4기 치료에 사용되었던 면역항암제들은 1~3A기 등 비교적 초기 병기의 비소세포폐암에서 수술 후 보조요법이나 수술 전 선행 유도요법 등의 임상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표적치료제인 오시머티닙은 수술 후 보조항암요법으로서 재발율을 80% 이상 감소시키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최근 미국암학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앞으로는 폐암 치료제들이 초기 환자들에서 수술 전 또는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사용되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각 연구들에 대한 최종 데이터가 발표되진 않았지만, 향후 5년 안에는 이러한 약물들을 통해 환자들의 생존율과 완치율을 더욱 높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소세포폐암에서는 기존의 돌연변이 이외에 매우 드문 유전자 돌연변이들이 차세대 유전자 염기서열 검사를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고, 이를 타겟으로 하는 표적치료제들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일례로 폐암 환자의 1% 정도에서 발생하는 NTRK 유전자 전위에서는 엔트렉티닙과 랄로트렉티닙 같은 약물들이 60%가 넘는 반응률과 10개월 이상의 무진행생존기간을 달성하는 고무적인 결과를 보였고, 미국 FDA 허가를 획득한 상태다.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2% 정도에서 발견되고 있는 RET 유전자 전위의 경우 BLUE-667(성분명 프랄세티닙, pralsetinib)와 LOXO-292(성분명 셀퍼카티닙, selpercatinib) 등의 약제들이 우수한 치료 효과를 보였고, 이 중 셀퍼카티닙은 이미 FDA의 승인을 받았다. HER2 유전자 돌연변이도 약 1%정도에서 발견되는데, 최근 DS-8201이라는 약제가 40% 이상의 반응률과 14개월 이상의 무진행생존기간을 입증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또한 EGFR 돌연변이 중 EGFR억제제로는 거의 효과를 볼 수 없는 Exon20 insertion의 경우에는 최근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인 JNJ-372(성분명 아미반타맙, amivantamab)가 우수한 치료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 암 종에서 오래전에 밝혀진 K-RAS 유전자 돌연변이는 비소세포폐암에서도 서양인의 30%, 동양인에서는 10% 정도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그간 이를 타겟으로 하는 약제 개발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K-RAS 유전자 중 G12C 아형 돌연변이에서 AMG-510이라는 약제가 50~60%의 반응률을 보이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키트루다, 티쎈트릭, 옵디보 등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면역항암제들의 경우에도 치료 효과를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화학항암요법이나 CTLA-4 억제제, 면역관문 억제제, 신생혈관억제제 등 다양한 약제들과의 병용치료에 대한 여러 임상 연구들을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치료제들의 개발은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들도 산재되어 있다. 표적치료제의 가장 큰 문제점인 약제에 대한 '내성' 발현과, 면역항암제에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 선별을 위한 이상적인 '바이오마커'의 부재가 바로 그것.

안 위원장은 "표적치료제들은 결국 완치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에 따라 다양한 유전자들을 파악하여 생존기간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약제의 내성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면역항암제는 높은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군을 명확하게 선별하는 바이오마커를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이 약제 또한 내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에 사용되고 있던 여러 약제들의 병용요법과 함께 최근에는 새로운 치료요법으로 암백신, BiTE, CAR-T 등도 많이 시도되고 있고, 이와 같은 약제들을 이용하여 환자의 치료 효과는 향상시키고 부작용은 더욱 줄일 수 있는 연구들이 진행되어야 한다"며 "면역항암제에서도 약물의 사용기한이나 바이오마커와 같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은 만큼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컨센서스 통해 최신 지견 공유...약제에 따른 새로운 정책 마련도 필요

대한항암요법연구회의 폐암분과는 전국의 20여개의 기관에서 50명 이상의 폐암 전문 종양내과 의료진들이 모여 최신 지견을 공유하고, 다양한 종류의 임상 연구 및 기초 연구들을 통해 국내 폐암치료의 발전에 몰두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최근에는 폐암 치료제에 대한 다수의 기초 및 임상 연구들이 빠르게 진행될 뿐더러, 각 병원이나 의료진에 따라 참여하는 연구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 명의 의료진이 모든 연구결과에 대해 숙지하기가 어렵다"며 "폐암분과에서는 주기적인 모임을 통해 이러한 연구 진행 경과와 폐암 치료의 최신지견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즉 의료진 각자의 경험과 지식 공유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하고 있는 것. 이에 분과 모임이 열릴 때마다 그 사이 발표된 폐암에 대한 저널의 논문에 대한 리뷰를 폐암분과 위원들이 번갈아 맡아 발표하며 최신 지견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기관 임상연구 현황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새로운 임상 연구들을 제안하면서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안 위원장은 "많은 의료진들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이제는 우리나라가 다국적 임상 연구에 있어 명실공히 우수한 국가로 인정받고 있을 뿐더러, 환자 등록율과 임상 연구의 질적인 부분에서도 위상이 높아지면서 1상 임상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연구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일부 연구는 한국 연구자가 전체 임상 연구 주도자가 되기도 하고, 미국암학회나 폐암학회, 유럽암학회 등 국제적인 학회에서 발표 또는 초청연자로 참여하는 등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고 자부했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 폐암 신약들이 허가를 받은 시간도 과거에 비해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약 개발 비용이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하면서 약제들의 가격도 높아지게 되고, 더구나 고가 약제들을 2제 또는 3제 병용요법으로 사용하면서 약가에 대한 부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국가보험이라는 제도하에 보험 약제에 대해 암 환자들의 부담금은 5%, 나머지 95%는 정부가 모두 부담하고 있다"며 "결국 고가의 신약들에 대해 보험 급여를 인정해 줄수록 정부의 부담이 점점 커지면서 약제 급여에 대해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약제의 허가 속도가 빠르게 이뤄진다 하더라도 보험 급여 적용이 안된다면 결국 치료를 위해 환자들은 약제 비용을 100%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약제의 선택지는 과거에 비해 대폭 늘어났지만, 급여권으로 유입되기가 점점 어려워져 신약을 쓸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더 줄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안 위원장은 "현 상황은 제약사나 정부 모두 약가 부담이 큰 만큼 환자의 부담금을 늘리거나 선별급여제도 혹은 호주 같은 국가에서 도입하는 암환자 펀드와 같은 정책 도입 등 타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에 가장 알맞은 모델을 구축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며 "많은 환자들이 더욱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대책에 대해 정부와 국민, 제약회사, 그리고 의료진이 공감대를 형성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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