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세포암에서 면역항암제 투여 후 반응이 없는 경우 HPD(Hyperprogressive disease, 급성종양진행)를 고려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 받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미국 소화기암학회(ASCO GI)에서 국내 3개 의료기관(분당차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의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로 치료를 받은 간암 환자 148명의 HPD에 대한 분석 결과가 발표됐다. HPD는 이전 치료 대비 면역항암제 치료 후 종양의 성장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진 환자로 정의했으며, 간암에서 HPD의 발생 정도를 확인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결과, TGK(tumor growth kinetics)와 TGR(tumor growth ratio)을 모두 충족한 환자 중 23%에서 HPD가 발생했다. HPD 환자 중 후속 치료를 받은 경우는 불과 9.4%에 불과했다. 이는 PR/SD(67.5%), HPD가 없는 PD(53.6%) 대비 매우 낮은 수치로 사실상 후속 치료 기회가 박탈된 것과 다름없는 수준.

분당차병원 종양내과 전홍재 교수
분당차병원 종양내과 전홍재 교수

해당 연구를 주도한 분당차병원 종양내과 전홍재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치료 반응이 있을 경우 효과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반응률이 매우 중요하다"며 "간암에서의 면역항암제 반응률은 대략 15~20%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대로, 면역항암제 단독요법에 대한 반응이 없는 환자의 수치는 30~40%에 달한다"며 "무엇보다 HPD에 해당되는 환자 비율이 23% 가량으로 나타난 만큼, 면역항암제의 단독요법의 한계도 충분히 고려해서 처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HPD는 NLR(neutrophil to lymphocyte ratio, 호중구와 림프구 비율) 수치가 높을수록 발생률도 높아졌다. 연구에 참여한 환자 중 NLR 수치가 2 미만에서는 HPD 발생이 없었고, 2~4에서는 9.8%, 4~6은 41.7%, 6이 넘은 경우에는 72.2%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는 NLR이 HPD를 예측할 수 있는 하나의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셈.

전 교수는 "이 같은 결과는 간암에서 면역항암제 단독 치료 시 가능하다면 빠른 반응 평가가 필요하고, 질병이 진행할 경우엔 빠르게 후속 치료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면역항암제의 치료 효과가 우수하지만, 지금처럼 간암에서 약제 옵션이 다양해지는 상황에서는 반응 평가 결과에 따라 다른 치료 옵션으로 변경하는 것이 환자 예후에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홍재 교수는 지난달 열린 미국 암학회(ASCO 2020)에서 간암 환자들에서 가장 병변이 많은 장기인 간 병변이 있는 환자에서 면역항암제의 반응률이 떨어진다는 국내 임상 데이터도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국내 5개 기관(분당차병원 전홍재 교수, 세브란스병원 최혜진 교수, 삼성서울병원 임호영 교수, 해운대백병원 김일환 교수, 울산대병원 천재경 교수)의 환자 26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다.

연구 결과, 면역항암제 단일 요법으로 치료를 받은 간암 환자 중 간 병변이 있는 환자의 반응률은 10.1%로, 폐(24.2%), 임파선(37.1%), 기타(14.6%) 병변이 있는 환자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간 병변이 있는 환자 중에서는 간내 종양의 크기가 커질수록 반응률이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종양의 크기가 5cm 이하인 환자에서의 면역항암제 반응률은 13%, 5~10cm는 8.1%, 10cm를 넘은 환자는 5.5%로 종양의 크기와 반응률은 반비례했다.

전홍재 교수는 "같은 간암이어도 병변의 위치나 간내 종양의 크기에 따라 면역항암제의 반응률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점은, 면역항암제가 간이라는 장기 자체에 반응률이 높지 않다는 의미"라며 "간암에서 면역항암제 단독 치료를 시도할 경우 다양한 요인들을 전략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보고된 연구들을 보면 간은 VEGF 발현이 높아 면역항암치료에 대한 저항성이 충분히 높을 수 있다"며 "간암 치료에 주로 사용되고 있는 혈관생성억제제는 단순히 암 혈관 생성만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는 VEGF를 낮춰 T세포 기능을 활성화 시키는 약물로 재평가 받고 있는 만큼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요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이러한 결과를 간암의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한 것이 바로 티쎈트릭+아바스틴 병용치료의 결과"라며 "현재는 진행성 간암에서 많은 면역항암제 병용요법들이 검증되고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는 만큼, 멀지 않은 미래에는 면역항암치료 단독요법을 넘어 다양한 병용치료법들이 환자들에게 더 좋은 치료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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