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은 주로 만성간질환 환자에서 발생하고, 조기에 치료하더라도 재발률이 높다. 또한 치료가 까다로워 타 암종에 비해 치료 성적이 좋지 않은 질환이다.

간암 치료에는 수술적 절제술과 함께 고주파 열치료, 냉동치료, 마이크로웨이브 소작술, 색전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표적치료, 면역치료, 간이식, 양성자치료 등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치료법들의 전문의 분과가 서로 다르고 종양 치료와 간 기능 보호, 기저질환 치료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최상의 치료 결과를 내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간암의 치료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의료계에선 다학제 진료가 최선의 전략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본지는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이명아 교수를 만나 간암의 다학제 진료 필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이명아 교수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이명아 교수

간암, 다학제적 진료가 가장 필요한 암종

간암은 다른 암종과 달리 주로 간염이나 간경화와 같은 간 질환들이 만성기를 거쳐서 발병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간암으로 진단된 환자들은 만성 간 질환을 동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환자 대다수는 진단 초기부터 간 기능이 일반인에 비해 많이 저하된 상태로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이명아 교수는 "간암은 기저질환이 만성기를 거쳐 진행되기 때문에 간 기능과 기저질환의 치료가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종양을 해결하더라도 그 원인인 장기에 대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간암이 높은 확률로 재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종양 뿐 아니라 암세포가 자라나는 환경 자체를 해결하는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간암 초기 환자들이 아닌 이상에는 종양과 기저질환을 동시에 치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신 질환인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 치료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약제는 간에서 대사되기 때문에 간의 기능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이 교수는 " 종양내과 전문의는 약물의 효과와 독성, 그리고 질병의 예후를 고려하여 최소한의 위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한 치료에 전문적이지만 간암이 아닌 기저 간 질환을 치료하거나 간 기능을 조절하는 치료에는 익숙하지 않다"며 "반면, 간 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소화기 내과 전문의나 방사선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방사선 종양학과, 간 색전술 등의 중재방사선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중재영상의학과 전문의는 항암제가 투약되어 대사되기까지 여러 장기에 전신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부작용 및 독성에 대한 조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즉, 간 질환과 간 기능에 대한 치료는 소화기 내과가, 방사선 치료는 방사선 종양학과, 간에 대한 중재술에 대한 치료는 인터벤션 영상의학과, 전신 약물 치료에 대해서는 종양내과가 각각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고 의미이다. 실제로 전신 약물 치료의 경우 단순히 임상에서 보여준 데이터만을 가지고 모든 환자들에게 적용하기는 어려워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환자의 전신 상태에 따라 최대한의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용량을 결정하고, 독성으로 인한 단순 용량 감량이 아닌 전체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 더욱이 효과와 독성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신약이나 임상 연구 단계의 약물인 경우에는 일정한 규칙이 없는 만큼 종양내과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는 "결국 여러가지 요소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간암에서 어느 한 분과가 모든걸 진료하고 결정하게 된다면 최대한의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며 "간암에서 최선의 치료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플랜을 세우는 단계에서부터 다학제적 접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명아 교수는 간암에 대해 다학제 진료가 가장 필요한 암종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이명아 교수는 간암에 대해 다학제 진료가 가장 필요한 암종 중 하나라고 전했다.

간암 다학제 진료, 환자 생존율 향상에 효과적

간암 다학제 진료가 치료 성적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점은 다학제 진료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국내 의료기관들의 연구들을 통해 이미 입증된 상태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다학제 진료를 받은 간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1.2%, 단일 진료를 받은 환자는 49.4%였다. 또 다학제 진료를 받지 않은 환자의 사망 위험도를 계산했을 때 다학제 진료 만으로도 사망위험을 33% 가량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차병원에서는 16cm가 넘는 거대 간암을 소화기내과와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혈액종양내과, 영상의학과가 다학제팀을 꾸려 고선량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 간문맥색전술, 수술적 절제술을 시행해 치료에 성공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오랜 기간동안 치료의 기술과 약물들이 발전했지만, 대부분 각 의료진들이 전문으로 하는 분야에 대해서만 업데이트가 이뤄졌을 뿐, 타 분과의 신기술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며 "다학제적 접근이 이뤄진 이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치료법을 타 분과에서 서로 제시해 주다보니 증상 완화 뿐만 아니라 병을 조절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됐던 환자들도 치료를 시도할 수 있게 됐다고.

그는 "수술적 테크닉을 비롯하여 방사선 기법 등 각 분과의 새로운 치료법들이 많이 발전한 상태"라며 "종양내과에서도 과거 넥사바만 존재했던 치료제가 이제는 스티바가와 렌비마, 카보메틱스, 옵디보, 티쎈트릭 등 다양한 옵션이 존재하게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밝혔다.

다학제 기반 마련 위한 노력 필요

간암 치료에 있어 효율적인 다학제 진료가 필요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교수는 "유럽에서는 주치의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다학제가 많이 이뤄지고 있고,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간암 환자의 비중은 높지만 아직까지는 의료진과 환자간의 1대1 대면 진료가 선호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평했다.

간암 진단을 받기 오래전부터 간질환 치료를 위해 주치의와 라포를 쌓아 온 환자 입장에서 담당 의료진이 바뀌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고, 다학제팀 의료진들의 노력, 낮은 수가 등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 교수는 "간질환을 오랫동안 치료해 온 주치의와 친밀도를 형성한 상황에서 어느날 여러 과에서 동시에 진료를 보는 것이 환자에게는 상당히 낯선 환경일 수 있고, 불안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의료진 입장에서도 다학제 시스템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가 안되어 있거나 익숙하지 않을 경우엔 오히려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번거로운 작업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다학제 진료는 일반 진료보다 배가 넘는 시간이 소요되지만 그에 대한 수가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며 "수가보다는 각각의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의료진과 병원들의 노력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학제 시스템에서 환자의 전체 치료 전략을 짜는 것에 대한 수가는 책정되어 있지 않다. 다수의 의료진들이 모여 환자 진료를 보는 경우에는 수가가 책정되어 있지만, 타 진료에 비해 굉장히 적은 수치. 더욱이 다학제 진료는 최대 9명까지 동시에 진료를 보는 만큼, 환자 진료에 소요되는 시간이 일반 진료보다 9배 이상 오래 걸리는데 비해 수가는 1/3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교수는 "여러가지 이유로 다학제 시스템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선의 치료를 환자에게 제공해 주기 위해 이제라도 다학제 시스템이 정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의견을 나누고 조언한다면 새로운 치료 방향을 창출할 수 있는 만큼, 환자와 의료진 모두 좀더 넓은 시선으로 다학제 시스템을 바라봐 주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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