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항생제로는 치료가 불가능해 일명 슈퍼박테리아라고도 불리고 있는 다제내성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케이스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한 해에 약 70만명의 환자들이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추세대로 간다면 2050년 경에는 1년에 약 1천만 명의 환자가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사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WHO에서는 각 국가별로 항생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응방침 마련을 촉구해 왔다. 특히 내성문제가 가장 심각한 12종의 균종을 항생제 연구개발 최우선 순위로 선정했는데, 이는 모두 카바페넴계 내성균이다. 

국내에서도 카바페넴계 내성균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실시한 국내 항생제 내성 감시 결과, 중환자실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이시네토박터바우마니균'의 73.4%가 카바페넴 내성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올 6월부터 CRE(Carbapenem-Resistant Enterobacteriacea,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를 3군 감염병으로 지정하고 전수 감시체제에 돌입했다. 그 결과 2010년 1,000건, 2016년에 3,700여 건이었던 CRE는 단 3개월만에 2,600여 건이 발생하는 등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CRE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새로운 약제가 등장하지 않아 현재 중환자실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현 상황이 2~3년 가량 이어진다면 메르스를 넘어서는 규모의 감염병 대란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세계 각국들,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에 총력

이러한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에서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에 나선 미국의 경우 2012년부터 '항생제 개발 촉진법'을 시행하며 신규 항생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항생제 개발 촉진법은 감염질환인증제품으로 지정된 신규 항생제에 대해 신속 허가 및 5년간의 시장독점권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항생제 개발을 장려하는 제도다.

미국은 항생제 개발 촉진법 시행 이후 약 5년간 총 6종의 신규 항생제가 FDA의 허가를 획득했으며, 이 가운데는 CRE 항생제도 존재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 역시 신규 항생제 도입 등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CRE 감염 환자 관리에 나서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시네토박터바우마니균의 카바페넴 내성률이 5% 미만이다.

이재갑 교수는 "일본은 한 병원에서 CRE 환자가 1~2명만 나와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우리나라와 비교해 본다면, 국내의 한 병원에서 발생하는 CRE 환자 수보다 일본 전체에서 발생하는 CRE 환자수가 더 적을 정도"라고 전했다.

국내 환자들, 정부의 탁상공론에 죽음으로 내몰려

세계적인 추세와 달리 국내에서는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재갑 교수는 "다제내성균 관리를 위한 정부 당국의 정책 방향은 항생제를 줄이는 방향으로만 포커싱이 되어 있다"며 "이러한 정책은 감기 등에 사용되는 항생제에 국한되어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모든 항생제에 적용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는 중환자나 면역 기능이 저하된 환자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다제내성균 치료와 감기 치료에 사용되는 항생제를 동급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

이 교수는 "감기에 사용되는 항생제와 중환자실에서 사용되는 항생제는 전혀 다른 문제"라며 "감기는 거시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다제내성은 환자 수는 적어도 사망 위험이 매우 높아 항생제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항생제 사용 줄이기에 급급하다보니 항생제 신약들에 대한 적절한 대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도 지난 10년간 6종의 신규 항생제가 허가를 받았지만, 시장에 출시된 제품은 단 3종 뿐"이라며 "허가를 받았음에도 출시를 하지 않는 이유는 국내에선 항생제 신약에 대해 터무니없는 약가를 책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신규 항생제가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대체약제들의 가중평균가로 약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체약제들은 출시된지 수십년이 지난 약물들로, 제네릭 제품들과 가격 경쟁을 펼칠 정도로 낮은 약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제약사들은 국내 시장 출시를 꺼리고 있는 것.

경제성 평가를 통해 약가를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경제성 평가는 임상시험의 결과 자료를 바탕으로 유효성과 안전성, 효용개선 등 약물의 경제적인 가치만을 판단할 뿐, 내성 관리 측면의 가치는 반영되지 않는다.

이 교수는 "CRE 항생제의 경우 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 하루에 지불되는 약가가 수술비보다 비싸다"며 "결국 돈 없는 환자들은 살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재갑 교수는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약이 있음에도 정부 정책으로 인해 약을 사용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이재갑 교수는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약이 있음에도 정부 정책으로 인해 약을 사용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정부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암이나 심혈관질환으로 다수의 환자들이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질환을 가진 다수의 환자들은 항생제를 제때 사용하지 못해 폐혈증 등으로 죽는 것"이라며 "심사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불필요하게 비싼 항생제를 사용한다고 보고 있지만, 현장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정책은 나올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저박사 급여 유무, 국내 항생제 시장의 향방 가를 것

이러한 국내 시장에 최근 CRE 환자들을 위한 다제내성 항생제 '저박사(성분명 세프톨로잔+타조박탐)'가 허가를 획득하면서 향후 급여 여부에 업계와 의료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갑 교수는 "다수의 제약사들이 국내 시장을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항생제가 등장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다만 급여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기존에 허가 받았던 약제들과 마찬가지로 환자들와 의료진들에게는 희망고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저박사의 급여 유무는 단순히 저박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번에도 급여 적용이 안된다면 향후 국내 시장을 포기하는 제약사들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미 여러 약물들이 국내 출시를 포기한 바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약물이 '큐비신(성분명 답토마이신)'이다.

이 교수는 "큐비신은 심장판막 수술 후 감염이 발생한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약물로 10여년전 국내 허가를 획득했지만, 정부의 잘못된 약가 산정으로 인해 국내 출시를 포기했다"며 "이제는 시간이 너무 흘러 큐비신의 제네릭 제품이 국내에 퍼스트 약제로 들어오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인 동아에스티의 '시벡스트로(성분명 테디졸리드인산염)' 역시 약가 문제로 인해 미국에서 제조하여 역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이 교수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저박사를 비롯한 효과가 좋은 신규 항생제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지만, 국내 출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제약사는 극소수"라며 "큐비신과 시벡스트로에 이어 저박사까지 에비던스 베이스가 명확한 약물들이 급여에 실패한다면 국내에서 더 이상 신규 항생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e-의료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