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의대 내과학교실 유교상

만성췌장염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염증과 섬유화 과정으로 인하여 췌장의 실질이 손상을 받고 섬유 조직으로 대치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췌장 실질과 췌관의 형태학적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만성 질환이다. 이러한 과정으로 인하여 궁극적으로 췌장의 외분비 그리고 내분비 기능에 있어서도 영구적인 장애를 가져오게 된다. 만성췌장염 환자의 약40-50%에서는 만성적인 췌장 외분비 기능부전이 발생하여 흡수 장애를 초래하고 이로 인하여 설사, 지방변과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을 나타나며, 약 40% 이상에서는 내분비 기능부전으로 인한 당뇨가 동반된다.

치료에 있어서는 이제까지 오랜 기간의 여러 연구에도 불구하고 만성췌장염의 치료는 대부분 경험적인 치료에 머물러 있고, 염증 및 섬유화 과정에 직접 작용하여 경과를 호전시키는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아직까지 없는 실정이다. 만성췌장염에서 치료의 목표는 급성 혹은 만성의 통증을 조절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질병의 경과를 안정시키며, 영양장애, 당뇨 등의 대사합병증을 교정하고, 합병증이 발생하면 이를 치료하며 더불어 정신사회학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다.

만성췌장염은 일반적으로 구조적인 이상이 매우 진행되어 있는 big-duct disease (large-duct disease, 주췌관의 직경이 6mm 이상)와 그렇지 않은 small-duct disease(주췌관의 직경이 6mm 미만)로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하는 것은 임상 경과, 치료, 예후에 있어서 각 형태에 따라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내과적 치료는 두 형태 모두에 적용할 수 있지만, 내시경 치료나 수술 등의 치료는 주로 big-duct disease에 적절한 치료 방법이다. 약물을 이용한 내과적 치료는 주로 통증의 조절, 외분비 기능부전에 대한 치료, 그리고 내분비 기능부전에 대한 치료로 이루어진다. 내시경 치료와 수술은 통증이나 특정한 합병증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내과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조절이 되지 않을 때 고려한다. 이번 글에서는 만성췌장염의 내과적 치료에 대하여 최근의 연구 결과와 의견들을 토대로 하여 임상에서 유용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통증 조절

만성췌장염의 주증상인 복통은 만성췌장염 환자의 80-90%에서 동반되고 입원하는 경우의 93%에서 입원을 하게 하는 원인 증상이 된다. 통증은 전형적으로는 특징에 따라 두 가지의 양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갑작스러운 췌장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그 사이에는 증상이 없는 형태와 다른 형태는 악화되는 지속적인 통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사이사이에 며칠 정도의 상대적으로 통증이 조금 덜한 기간이 있는 형태이다. 최근 시행되었던 다기관 연구에서는 지속적인 통증이 있는 경우에 간헐적으로 통증이 있는 경우보다 삶의 질이 유의하게 저하되고, 일상 생활의 장애나 의료시설의 이용도 높다고 보고하였다.

예전부터 병이 진행됨에 따라서 췌장 통증은 그 강도나 횟수가 점차 감소하고 궁극적으로는 ‘burnout’의 개념으로 통증이 자연적으로 소실되게 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모든 환자에서 그런 경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어서 논란이 있어왔으며 또한 이를 예측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통증이 있는 환자에서 이후 통증이 소실될 것을 기대하고 단지 기다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최근에는 췌장의 반복적인 염증과 손상은 결국 비가역적인 손상으로 진행되고, 이것이 말초와 중추의 통각 신경이 민감하게 되는 것과 연관되면서 지속적인 만성 통증이 발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췌장염이 진행되어 이러한 과정이 확립되게 되면 통증 조절의 효과가 점차 훨씬 덜 해지기 때문에 가능한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여 이러한 진행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통증은 주로 상복부에서 느껴지며 많은 환자에서 등 쪽으로 방사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식사를 하면 악화되기도 하고, 통증이 심한 경우에는 오심이나 구토가 동반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들이 만성췌장염에서 발생하는 복통의 통증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통증의 위치, 지속시간, 양상, 강도 등에 있어서 통증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한편 통증의 자연 경과도 환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그러므로 치료 전 통증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객관화된 방법이 없고 다양한 통증의 양상과 자연 경과로 인하여 치료의 효과를 판정하는 데 있어서도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통증 치료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만성췌장염에서 통증의 치료를 표준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통증 치료에 있어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첫 번째로 만성췌장염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는 통증을 치료하기에 앞서 만성췌장염의 진단이 확실한지 확인해야 한다. 췌장염이 진행된 환자의 경우에는 진단이 어렵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있고, 특히 small-duct disease의 경우에는 진단이 더욱 어려울 수 있다. 두 번째는 만성췌장염의 정도와 통증을 유발할 만한 합병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합병증인 췌장암, 가성낭종, 십이지장 혹은 담도 폐쇄 등과 연관되어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합병증에 대한 치료가 이루어져야 통증이 호전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통증의 양상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각각의 환자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통증의 양상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췌장 손상의 진행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통증 완화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으므로, 만성췌장염의 원인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알코올성 만성췌장염에서 금주를 하는 것이 모든 환자에서 통증을 없애주는지에 대해서는 일부 논란이 있지만 금주가 췌장염의 진행을 늦출 수 있고 통증조절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금주는 만성췌장염 환자에서 생존기간을 늘려주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도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음주를 하는 환자에서는 금주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흡연도 만성췌장염의 중요한 위험인자의 하나이며 최근 만성췌장염, 석회화로의 진행, 췌장 기능 장애 등에 있어서 독립적으로 연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 금연을 강력히 권유해야 한다.

진통제

만성췌장염에서 아직까지 통증 조절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약제는 진통제이다. 많은 환자에서 처음에는 통증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그 사이에 통증 없이 잘 지내는 기간도 있다.

이처럼 간헐적으로만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진통제를 투여할 필요는 없고, 통증이 지속적으로 있는 경우에는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진통제의 투여가 필요하다.

진통제의 사용은 일반적으로 만성 통증에 대한 3단계의 WHO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처음에는 아세트아미노펜이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SAIDs)를 단독으로 혹은 이를 병합하여 투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통증을 조절해본다.

만일 효과가 충분치 않을 때에는 말초에 작용하는 약제와 중추에 작용하는 약제를 병합하는 것을 고려한다. 비마약성 진통제와 약한 마약성 진통제인 트라마돌을 병합하여 사용한다. 트라마돌은 보다 효과가 강한 마약성 진통제와 비슷한 정도로 통증을 조절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약물 중독이나 오용의 가능성이 낮고 위장관의 운동에도 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증의 정도를 평가하고 약제의 용량을 조절하는데 있어서는 시각적 통증 척도(visual analogue scale, VAS)를 이용하는 것이 유용하다.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진통제와 신경이완성 항우울제를 병합하여 사용한다.

일부 환자에서는 보다 강력한 효과를 가진 마약성 진통제를 필요로 한다. 이런 환자들에게는 모두 진통제와 함께 보조적인 약제를 같이 투여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보조적인제제로는 삼환계 항우울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SSRIs), 세로토닌-노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 병합 제제(duolexitine) 등이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에서 α2δ 억제제(pregabalin, gabapentine)도 만성췌장염에서 통증 조절에 보조적으로 사용하면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가능한 마약성 진통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약물 남용의 위험성 보다는 일차적으로 통증 조절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통증이 적절하게 조절되지 않는 경우까지 마약성진통제의 투여를 주저하거나 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진통제의 용량이나 투여 시간 간격은 환자 개인의 통증의 특징에 따라 개별적으로 조정하여야 한다.

경구 췌장 효소 제제

경구 췌장 효소 제제에 의한 통증 조절의 기전은 음성 피드백에 의하여 췌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십이지장내의 콜레시스토키닌 분비 펩타이드(CCK releasing peptide)는 정상적으로 췌장의 트립신에 의하여 변성된다. 그러나 만성췌장염에서는 췌장 선방세포(acinar cell)의 손상으로 췌장트립신 분비의 감소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콜레시스토키닌 분비 펩타이드의 변성이 불충분하게 일어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콜레시스토키닌의 강화와 함께 분비도 증가하게 되고 이는 결국 췌장 효소의 분비를 증가시킴으로써 통증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췌장 효소 제제를 경구로 투여하면 콜레시스토키닌 분비 펩타이드의 변성이 일어나므로 콜레시스토키닌의 분비는 감소하게 된다.

이런 기전에 의하여 경구 췌장 효소 제제가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활성화된 단백 분해 췌장 효소가 십이지장으로 전달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비 장용제피 제제(non-enteric coated preparation)를 투여해야 한다. 장용 제피제제의 경우에는 공장 혹은 회장에 이르기 전에는 활성화된 단백 분해 효소가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십이지장에서는 췌장 효소가 활성화되지 않고, 따라서 콜레시스토키닌 분비 펩타이드도 변성시킬 수 없다.

1998년 미국소화기학회(American Gastroenterological Association, AGA) 가이드라인에서도 만성췌장염의 통증에 췌장효소 제제를 투여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만성췌장염에서 경구 췌장 효소 제제 투여의 통증 조절에 대한 여러 연구들에서는 그 효과에 대하여 다양하게 보고하였는데, 이는 위약에 대한 높은 반응률, 투여한 효소 제제가 위산이나 췌장 효소 제제에 의하여 불활성화 되었을 가능성, 일부에서 장용 제피 제제(enteric coated preparation)를 투여하여 효과가 없었을 가능성 등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투여하는 방법은 비 장용제피 제제를 충분한 용량으로 식사시와 밤에 투여하고, 십이지장에 도달하기 전 위산에 의해 단백 분해 효소가 변성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위산 억제를 위한 프로톤 펌프 차단제나 H2 수용체 차단제 등을 같이 투여해야 한다. 6-8주 정도 췌장 효소 제제를 투여하면 이러한 효소 제제에 의하여 통증 조절이 반응이 있는지 평가할 수 있다. 췌장 효소 제제 투여에 반응이 있으면 6개월간 통증 없는 기간이 유지될 때까지 효소 제제의 투여를 지속한다. 왜냐하면 효소 제제를 중단하면 약 50%에서 증상이 다시 재발하기 때문이다.

항산화제

다양한 항산화제들도 만성췌장염에서의 통증 조절에 효과가 있는지 연구되었다. 산화 스트레스에 연관되는 표지자들이 만성췌장염에서 발견되고 또한 췌장 손상에도 산화 스트레스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항산화제가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단일 항산화제를 이용한 연구에서는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으나, 최근 연구에서 셀레늄, 메티오닌, 비타민 E와 C, 베타카로틴 등의 항산화제 복합제제를 투여하였을 때 통증을 호전시키고 산화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항산화제의 효과에 대해서는 보다 큰 규모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옥트레오타이드(octreotide)

옥트레오타이드는 장시간 지속되는 소마토스타틴의 합성유사체로 콜레시스토키닌을 감소시켜 췌장의 분비를 억제한다. 이러한 작용은 위에 언급한 비 장용제피제제의 췌장 효소에 의한 기전과 유사하다. 한편 췌관 폐쇄에서 췌관내 압력을 낮추고, 단백 분해를 감소시킨다. 이러한 작용을 고려하여 만성췌장염에서 통증 조절에 대한 효과에 대하여 연구가 있었다. 초록으로만 발표되었던 몇 연구에서 하루 세 번 피하주사를 하였을 때 통증 호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하였으나 통계적으로는 유의하지 않았고, 이후 연구에서는 효과가 증명되지는 않아서 추천되지 않는다.

<다음호에서 계속됩니다.>

<논문협조 - 대한내과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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