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선진국 유수 암센터들은 이미 암의 생물학적 치료에서 나아가 암 환자의 심리사회적 치료를 병행하며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한국정신종양학회(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태석 회장은 국내 첫 정신종양학 교과서 발행을 비롯해, 국내 현실에 맞는 치료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정신종양학 국내 첫 교과서 발행 예정

“우리 국민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리고, 그 중 70%는 생존합니다. 그동안 생존에만 급급했다면 이제는 생존 환자의 삶의 질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죠. 이에 학회에서는 국내 실정에 맞는 암 환자들의 심리사회적 지지치료를 위한 정신종양학 교과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학문인 ‘정신종양학’이란 암이 환자의 신체 건강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암의 심리적, 사회적, 행동적 측면에 대해 연구하는 종양학의 다학제적 전문 분야이다. 암 발병과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리적, 사회적, 행동적 요인들을 탐색하고,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면역학, 정신신경내분비학적 연구를 진행한다.

김 회장은 “전통적으로 암 치료는 바이오 메디컬, 즉 생물학적 치료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정신종양학은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암이 주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암의 심리사회적 측면을 아울러 다루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나온 임상적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신종양학이 다루는 학문의 포커스도 초창기와는 달라지고 있다고.

과거에는 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받는 환자들의 스트레스 문제를 다뤘다면, 이제는 그런 부분으로 국한하지 않고 암이 해결되어 가는 암 생존자, 또 진행성 암 환자들의 마지막까지 심리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  
 
여기에서 나아가 암환자 뿐 아니라 보호자인 가족들을 비롯해 의료진들의 번아웃으로 인한 감정적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다루어 암환자들을 잘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하는 등 학문의 폭이 대폭 넓어지고 있다. 

한편, 한국정신종양학회는 2005년 정신종양학연구회로 결성되어 2014년 전문학회로 창립했다. 1970년대 후반 최초로 시작한 미국에 비하면 많이 늦은 편이다.

이같이 국내에서는 역사가 비교적 길지 않다보니 아직 정식 국내 가이드라인이 나와 있지 않은 현실이다. 이에 학회에서는 국내 첫 정신종양학 교과서 발행을 준비 중이다.

“미국 유수의 암센터들에는 증상별, 암종별 다빈도적 문제들에 대해 정신종양학적 대응 규정이 필수로 들어가 있다”며 “우리도 국내 실정에 맞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때”라며 “특히 이 가이드라인은 추후 암병원을 평가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함봉진 교수가 간행위원장을 맡아 앞으로 2년 계획으로 교과서를 제작할 예정이다. 이 교과서는 정신의학과를 비롯해 다른 직종들에서도 볼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으며, 편집위원장을 중심으로 2~30명의 필진이 참여한다.   

 

'암을 치료할 때 암만 보지 말고 환자를 보자'

‘암을 치료할 때 암만 보지 말고 환자를 보자’는 것이 정신종양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암 환자들은 일반인보다 병적인 우울감, 불안감을 겪을 확률이 2~3배로 더 높다. 2018년 BMJ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암 환자가 우울감, 불안감을 겪는 비율은 각각 20%, 10%로, 일반인에게서 나타나는 평균 5%, 7%보다 높았다. 국내 조사에서는 암 환자가 우울, 불안을 겪는 비율이 약 11%, 16%로 일반인 평생 유병률인 3%, 6%의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 환자들은 암 치료 과정이나 진단에 대해 부정, 걱정, 두려움 등 스트레스 여파로 임상적으로 우울, 불안, 불면증 등을 많이 겪는다”며 “그런 부분들이 스스로 노력으로 극복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게 좋다”면서 “이를 판단하기 위해 학회에서는 선별검사 항목을 만들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암환자 중에서도 유방암 환자들은 가장 많은 정신적 문제를 겪는 편이다. 국내 유방암 환자의 약 10%가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방암으로 가슴을 절제한 환자는 ‘여성성’을 상실했다는 점에 의해 더 큰 스트레스를 겪는 것. 암 환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이 2배로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서울성모병원에서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100%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을 권장하고 있다. “2010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방문을 꺼려서 10명 중 3명 정도만 왔지만, 지금은 8~9명이 찾아와 상담을 할 정도로 활성화 됐다”며 “처음에는 외과나 종양내과 의사들도 환자를 보내는 것을 꺼려했지만 환자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의료진들의 생각도 달라진다”는 것. 이어 “국내 대형 암센터들에서도 암환자를 담당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을 배치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암센터들이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암환자 산정특례 1차 병원들과 연계 네트워크 준비

“암환자들은 본인부담 5%의 산정특례를 받기 때문에 암으로 인한 심리적 문제의 치료도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차 의료기관에는 이러한 네트워크 연계가 안 되어 있어 불편함이 많았죠. 이에 1차 병원에도 쉽게 산정특례를 받을 수 있는 연계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3차 병원이 아니라도 암 환자들이 동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저렴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 이는 지금도 가능하지만, 주치의의 의뢰서를 받아야 하는 등 번거로움 있고, 이를 잘 모르는 환자들도 많다. 이에 TF팀을 만들어 다른 서류 없이도 산정특례 혜택을 받아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 연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밖에도 학회는 연명치료에 대해서도 역할을 정립해 나갈 방침이다. 연명치료에 있어 정신의학이 어떤 역할을 하여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고민해 보겠다는 것.

한편, 암환자 대상의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수가가 따로 정해진 것은 없고 일반 치료 수가와 똑같다. 김 회장은 “암 관리에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수가가 현실적으로 반영되면 좋겠지만 아직은 서비스 개념이라 아쉽다”며 “그러나 암센터에서 심리적 케어를 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질적으로 높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외국과 다른 우리나라 상황을 반영해 정신종양학의 한국적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김 회장의 다짐이, 앞으로 암환자 케어의 나아갈 방향에 등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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