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막을 성형해서 굴절이상을 교정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이는 José Barraquer(1916~1998)이다. 스페인의 4대에 걸친 유명한 안과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바라커는 1949년에 최초의 refractive keratoplasty를 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수동 미세각막절개도를 이용하여 각막편을 만든 후,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별도의 작업실로 이동해서 cryolathe를 이용해 각막편(kerato-)을 얼린 후 후면을 깎아내는(-mileusis) 방식으로 도수를 교정하고 이를 다시 본래의 각막에 붙였다. 깎아낼 양은 펜과 종이로 일일이 계산했다고 한다.

1953년 콜롬비아의 보고타로 이주한 후 그는 Barraquer Institute of America를 설립, 본격적인 시력교정수술을 시행하고 또 교육하였다. 최초의 시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얼리던 것은 얼리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그 후 수동 미세각막절개도는 자동 미세각막절개도로(1988), 또 절편을 떼어내던 것은 경첩을 만들어(1989) 그 자리(in situ)에서 2nd microkeratome으로 절삭해 내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발전에는 바라커의 제자이기도 한 Luis Ruiz의 공이 컸다. 이 방법은 Automated Lamellar Keratoplasty(ALK)로도 불린다.

초창기 시술에서는 엑시머레이저도, 또 오늘날과 같은 절편 제작기도 등장하지 않았으나 아이디어만큼은 지금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in situ keratomileusis’에 laser가 더해진 것이 LASIK이다. 굴절교정수술에서의 이러한 선구자적 기여를 기려서 바라커에게는 ‘Father of Modern Refractive Surgery’라는 호칭이 따라다니며, 국제굴절수술학회(ISRS)에서는 해마다‘The Barraquer Lecture and Award’세션을 마련해서 그해 굴절교정수술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 사람에게 그의 이름이 붙은 상을 수여하고 있다.

Fig. José Ignacio Barraquer Moner(1916–1998)
Fig. José Ignacio Barraquer Moner(1916–1998)

바라커가 개발하고 루이츠가 발전시킨 시술이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던 그 무렵, 구 소비에트 연방의 안과의사였던 Fyodorov는 방사상각막절개술(Radial Keratotomy, RK)를 고안하게 된다. 각막에 안경알 파편이 박힌 아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파편 제거를 위해 각막에 방사상 절개를 넣었는데, 치료를 마친 후 아이는 오히려 안경 없이도 잘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경험이 표도로프로 하여금 RK를 고안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시력교정수술을 받으러 러시아로 원정 가는 경우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RK 시술 받은 눈을 진료실에서 지금도 가끔 보곤 한다. 정확도가 부족해서 더 이상 교정수술로는 시술되지 않고 있다.

엑시머레이저는 1970년대에 이미 태동하고 있었다. 자외선광을 이용하여 플라스틱 같은 고분자 유기화합물을 주변부에 대한 손상 없이 연마할 수 있음을 수십 년간 연구해 오던 인도 출신 과학자 Srinivasan은 이 기술이 의료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임을 착안하였고, 콜롬비아 대학의 Trokel과 함께 1983년 이 아이디어를 발표하기에 이른다(Trokel et al, AJO, 1983). 600회가 넘는 피인용 회수를 가진 이 논문에서, 트로켈 등은 photochemical laser-tissue interaction 혹은 photodecomposition에 의해 유기분자결합이 절단됨으로써 열손상 없이 각막조직(소의 눈을 이용함)이 마이크론 단위로 연마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엑시머수술로 불리곤 하는 PRK(photorefractive keratectomy)에 대한 최초의 연구 논문으로 간주된다. 트로켈은 VISX의 개발자로도 참여하였다.

정상인, 즉 순수하게 굴절이상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시술은 1988년 Marguerite B. McDonald에 의해서이며, 그 결과는 1989년 증례 보고의 형태로 발표되었다 (McDonald et al, Arch Ophthalmol, 1989).

이 연구는 FDA clinical trials의 일환으로 애초 ‘blind eye study’로서 진행되었는데 연구의 대상은 3년 전에 경접형동 뇌하수체수술과 우측 공막돌륭술을 받은 23세 여성이었다. 공막돌륭술을 받은 우측 눈은 -5디옵터의 근시와 ‘기능적 맹’을 겪고 있었다. (참고로, 보고서의 첨언에서 저자들은 이 여성의 상태가 실제 맹이 아니라 단순한 ‘기능적’ 맹이었음을 미리 알았다면 교정 수술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기능적’ 맹이라는 것을 안 것은 레이저시력교정수술 후, 환자의 ‘hysteria’가 사라진 것과 함께 시력이 극적으로 개선된 것을 보고 나서라고 했다.

뇌하수체수술이 시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술이라는 것에 대해 고지후동의(informed consent)를 마친 후 환자가 가지게 된 ‘hysteria’가 아마도 기능적 맹을 유발했을 것이라고, 사후 추측을 할 뿐이라고 했다. 이 같은 뒷얘기를 저자들이 굳이 밝힌 이유는, ‘blind eye study’에 기능적 맹을 가진 대상을 포함시켰다는 것에 대한 윤리적 부담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초의 시도는 쉽지 않은 법이다). VISX사의 레이저를 이용하여 구면대응치로 -4.75디옵터의 근시를 교정하였고 광학부의 직경은 5mm였다. 6개월 동안 경과 관찰을 한 결과의 보고이며 3개월 이후로는 나안시력이 1.0으로 안정되고 약간 있던 혼탁도 4개월째에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정상 근시안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본격적인 시술은 1990년 베를린에서 Seiler등에 의해서였으며, 26안을 1년간 경과 관찰하였다(Seiler et al, Ophthalmology, 1991).

이 무렵 이탈리아의 Buratto와 그리스 크레테 대학의 Ioannis G Pallikaris 등에 의해 LASIK이 정립되면서 시력교정수술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라식은 바라커와 루이츠가 개발했던 ALK에 각막 실질의 연마 도구로써 엑시머레이저를 접목시킨 것이다. Laser in situ keratomileusis (LASIK) 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도 이때이다(Pallikaris et al, Lasers Surg Med. 1990). 참고로 LASIK 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팰리카리스이지만, 이 방식에 대해 특허를 받은 것은 Peyman GA 이다.

시력을 회복시키는 ‘간편한’ 수술법으로 인식되면서 라식은 미국에서 시행되는 선택적 수술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빈번하게 시술되는 수술법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 그러나 ‘매우’ 드물긴 하나 ‘매우’ 심각한 라식의 합병증 사례가 심심찮게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이다. 표면연마가 다시 주목 받기 시작하고 또 제법 많은 시술자가 표면연마로 사실상 회귀하게 된 것에는 안전에 대한 염려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의 증가는 시술법의 개발과 개선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라섹은 1996년 하버드 의대 부속 Massachusetts Eye and Ear Infirmary에 재직 중이던 Dimitri T. Azar가 처음 시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Azar는 해당 병원에서 라식을 처음 시술한 의사이기도 하다), ‘LASEK(laser epithelial keratomileusis)’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서 이 시술법을 처음 공표한 것은 이탈리아의 Camellin(1998)이다.

이후 라섹은 laser assisted subepithelial keratectomy, laser subepithelial keratomileusis, subepithelial photorefractive keratectomy, epithelial flap photorefractive keratectomy, excimer laser subepithelial ablation, laser epithelial keratomileusis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조금씩 변형되고 발전해 간다. 상피를 버리는 PRK와 달리 라섹에서는 알코올을 이용해서 (Azar: 18%, 25s; Camellin: 20%, 30s) 상피편을 만들어 젖힌 후 드러나는 실질의 표면(보우만막)부터 레이저로 연마한 후 상피편을 다시 덮어주는 방식을 취한다. 한편 알코올은 라섹이 도입되기 이전에 이미 PRK에서 상피의 제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곤 했었다(Stein, JCRS,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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