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의 결핍으로 인해 혈관 세포 내 GL-3가 침착하면서 발병하는 파브리병. 국내 유병률은 약 12만 명 중 1명인 것으로 알려진 희귀한 질환이다.

파브리병은 조기에 치료할 경우 장기 손상을 늦출 수 있지만, 평균 2주에 한 번씩 정맥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함으로 인해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런 상황속에 최근 치료 편의성을 높인 경구용 치료제 '갈라폴드(성분명 미갈라스타트)'가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본지는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신장내과 권영주 교수를 만나 파브리병 조기 치료의 중요성과 갈라폴드의 효용성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가졌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신장내과 권영주 교수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신장내과 권영주 교수

파브리병,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

X염색체 우성 유전인 파브리병은 어머니가 환자일 경우 자녀는 성별에 관계없이 50% 확률로 유전되며, 아버지가 환자일 경우 딸은 100% 유전변이를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뇌, 심장, 신장 등 신체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심각한 합병증이 나타나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만큼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질환이다.

그럼에도 불구, 파브리병을 조기에 진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진단의 시기가 늦어지고 합병증으로 인해 장기가 손상되는 등 심각한 증상이 발현된 이후에야 진단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

이에 대해 권영주 교수는 "파브리병 진단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증상이 모호하기 때문"이라며 "첫 증상이 나타나는 소아기때에는 복통이나 손발이 타는 듯한 통증, 운동 후 땀이 나지 않는 등의 애매한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정도 병이 진행되면 통증을 느끼는 신경에 문제가 생겨 통증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파브리병 환자인 아이가 병원에 가더라도 통상적인 대증치료를 받고 병이 치료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며 "이후에 신장질환이나 심장질환, 뇌질환 등의 증상이 발생하더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감별이 쉽지 않아 파브리병 진단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파브리병은 초기 증상 발현 후 진단을 받는데까지 평균 10~15년 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저도 가족력이 있거나, 단백뇨 수치가 높아진 이후에서야 발견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권 교수는 "파브리병은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 경우 병의 진행을 멈출 수 있는 만큼 가족들 간에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신장의 경우 단백뇨가 1,000mg 이상이면 치료를 시작하더라도 신장 기능의 손상을 막을 수 없는 만큼, 파브리병 가족력이 있다면 경미한 수준인 미세알부민뇨가 나타나는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자 삶의 질 개선시킨 약물 '갈라폴드'

파브리병 치료가 늦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치료의 불편함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다.

그간 파브리병의 치료는 부족한 효소를 정맥을 통해 주기적으로 주사하는 효소대체요법(ERT; Enzyme Replacement Treatment)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효소대체요법의 경우 평균적으로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하여 정맥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환자들은 일상 생활의 영위를 위해 치료를 미루거나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내 파브리병 환자 중 실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1/4 수준에 불과할 정도.

권영주 교수는 "직장이나 학업과 같은 사회 활동이 활발한 환자들에게는 격주로 병원에 방문하여 주사를 맞는 것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며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그동안의 생활패턴이 모두 바뀌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권영주 교수는 갈라폴드에 대해 파브리병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켜 치료 순응도를 높여줄 수 있는 약제라고 평했다.
권영주 교수는 갈라폴드에 대해 파브리병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켜 치료 순응도를 높여줄 수 있는 약제라고 평했다.

이러한 와중에 복용 편의성이 우수한 경구용 치료제 갈라폴드의 등장은 환자와 의료진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터.

권 교수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하는 주사 치료와 달리, 경구제는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며 "특히 연령이 낮은 소아나 학생들에게는 주사 치료가 쉽지 않은 만큼, 조기 치료 관점에서 경구제는 굉장히 좋은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더욱이 경구제는 주사제에 비해 항체 발생에 대한 우려가 적다는 장점도 있다.

권 교수는 "주사제는 부족한 효소를 체내에 주입하기 때문에 항체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이에 반해 경구제는 이론적으로 환자 본인이 가지고 있는 효소를 안정화 시키는 기전의 약물인 만큼 항체 발생에 대한 우려도 적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경구제는 효소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환자가 효소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어야 사용이 가능하다"며 "효소가 전혀 없는 환자라면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투여하는 것처럼 효소를 바로 주사하는 주사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내외 가이드라인, 갈라폴드 1차 치료제로 권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갈라폴드는 파브리병 1차 치료 약제로 권고하고 있다.

권 교수는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경구용 치료제를 파브리병 1차 약제로 사용하고 있다"며 "경구제 사용이 가능한 환자라면 조기 치료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치료 시작 지점에 경구제를 쓰다가 다른 치료법으로 바꾸는 것이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경구용 약제가 1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지만, 유일하게 한국과 호주에서만 경구제가 2차 약제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신장학회 산하 파브리 연구회는 파브리병 조기 치료의 중요성과 경구제 1차 사용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킨 파브리병 진료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권 교수는 "가이드라인에는 파브리병이 어느정도 진행된 후 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늦기 때문에 조기 치료를 권고하는 내용을 주로 담았다"며 "이와 함께 경구제를 사용할 수 있는 환자들은 1차 약제로 경구제를, 2차 약제로 주사제를 권고하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이어 "해당 가이드라인은 내년도에 발표될 예정"이라며 "파브리연구회는 이후에도 경구용 치료제가 1차 치료제로 보험 급여를 받는 것을 포함해 환자들이 치료를 빨리 시작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e-의료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