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승 정재훈 변호사
법무법인 세승 정재훈 변호사

장기이식법에 의하면 뇌사자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도 신장, 간장, 골수 폐 등을 기증할 수 있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이 장기를 기증할 경우에는 자신의 장기를 이식받을 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이때 장기이식법령에 의하면 장기기증자와 이식대상자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장기기증자의 이식대상자 선정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은 장기매매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 ‘장기기증자와 이식대상자의 관계가 명확하게 확인되는 경우’의 의미에 관하여 최근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70대 남성에게 신장질환이 있어 장기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50대 여성이 산악회 활동을 같이 하였으며 내연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신장을 기증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는 장기이식대상자 선정 승인 신청을 하였다. 이에 대해서 질병관리본부장은 신청을 불승인하는 처분을 하였는데, 장기를 기증하고 이식받을 정도의 불륜관계라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① 사실혼에 준하여 함께 거주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부부 또는 연인관계로 인정될 정도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인정되거나, ② 두 사람 간의 불륜관계로 인하여 각각의 부부관계가 파탄 또는 파탄될 위기에 처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을 감수하면서까지 두 사람 간의 진정성이 느껴지거나 ③ 평소 부부관계가 법적인 의미의 부부일 뿐 부부로서의 의무준수 등의 의미가 없어 법적 배우자보다 다른 이성에게 더 많은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인정될 정도의 관계여야 한다고 불승인 처분의 이유를 제시하였다. 두 사람의 관계로 인하여 가정생활에 최소한 외견상 영향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연으로 생각하고 오랜 기간 친밀한 관계를 지속해 왔다고 보기에는 관계 자료가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이식대상자 선정을 위해서 장기기증자와 이식대상자의 관계가 명확하게 확인되어야 하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일 뿐인데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장기이식법과 시행규칙에 의하면 장기기증자와 이식대상자의 관계가 명확하게 확인되는 경우 이식대상자 선정을 승인하여야 한다. 관계가 명확하게 확인될 것을 요구할 뿐, 오랜 기간 친밀한 관계를 지속했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장은 법령의 근거 없이 단지 행정청 내부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업무안내서 등을 근거로 하여 추가적인 요건을 요구했고 그러한 추가적인 요건 불충족을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한 것인바, 법원은 이를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장기기증자와 이식대상자의 관계가 명확하게 확인되는 것 외에 오랜 기간 친밀한 관계를 지속했을 것이라는 요건을 추가한다면 장기매매의 위험을 보다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를 법령에 규정하여 국민이 예측 가능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지, 행정청 내부지침으로 추가적인 요건을 창설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e-의료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