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승 김윤진 변호사
법무법인 세승 김윤진 변호사

경찰이 의료기관에게 법원이 발부한 영장 없이 ‘협조공문’을 보내어 환자에 관한 기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라도 국가기관에 의해 자료요청을 받으면 응당 협조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혹시 거절하면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되기 마련이다. 그런 한편 진료기록은 환자의 개인정보이기에, 이를 넘겨주어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수사기관의 자료제출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할까?

의료법 제21조는 원칙적으로 의료인은 환자 진료기록을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자의 진료기록에 대한 결정권을 보호하는 취지다. 다만 의료법은 예외적으로 법 제21조 제3항 각호가 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환자 본인 이외의 제3자에게도 진료기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가령 환자의 배우자 등 일정한 관계에 있는 자가 환자의 동의를 받아 요청하는 경우, 환자가 지정하는 대리인이 환자 본인의 동의서 등을 갖추어 요청한 경우,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이 있는 경우 등이다. 동조 제3항 제6호는 법원의 명령(형사소송법 제106조) 및 영장이 있는 경우(형사소송법 제215조)와 함께 ‘임의제출(형사소송법 제218조)’도 제3자에게 진료기록 제공이 가능한 예외적인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의료기관에게 협조공문 등의 형태로 환자에 관한 진료기록을 요구하는 것은 동 규정에 근거하여 임의제출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임의제출이란 말 그대로 물건 등의 소유자·소지자·보관자가 자발적인 판단에 의해 수사기관에 이를 임의로 제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의료법은 의료인이 진료기록 제출로 인하여 달성되는 공익과 그로 인해 침해되는 환자의 이익을 비교하여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수사기관에 진료기록을 제출할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재량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지,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진료기록을 제출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영장을 받지 않고 환자 진료기록을 임의제출해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 의료인으로서는 반드시 이에 응하여 진료기록을 제출할 필요는 없다.

만약 영장에 의한 청구 없이 진료기록을 수사기록에 임의제출 할 경우,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서는 의료인은 의료법 또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행정적으로는 의사 면허 자격정지처분을 받을 수 있음에 유의해야 있다. 아울러 환자 측으로부터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받을 수도 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위 의료법상 예외규정 등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에 있는 경우에도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의료기관으로서는 자료 제출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환자 본인의 동의를 거쳐 진료기록을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제출하는 자료의 범위 또한 최소한의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환자의 진료기록은 매우 민감한 정보이므로, 의료기관으로서는 수사기관이 자료제출을 요구하더라도 이에 무심코 응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수사기관의 자료제출 요구가 있는 경우,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수사기관에게 필요한 자료의 범위 및 근거를 설명하여 줄 것을 요구하거나 수사에 필요한 부분만을 제출하는 등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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