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은 시간, 20대 중반의 청년이 앰뷸런스에 실려 왔다.
“형이 정신착란을 일으켰나 봐요. 성기를 잘랐어요. 어쩌면 좋지요?”
잘려 나간 조각을 손에 움켜쥔 채 울상인 동생을 겨우 안정시키고, 실신한 채 누워 있는 청년의 아랫도리를 들추었다. 끔찍했다. 음경 부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뿌리만 남고 형체는 완전히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먼저 절단된 부위를 소독액으로 세척한 후 얼음물에 보관시키면서 수술을 시작했다. 음경의 남은 뿌리를 감싼 압박 붕대를 풀자 피가 쏟아져 나왔다.
놀란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초를 다투는 현장에 단 한 치의 여유도 부릴 틈이 없었다. 지압으로 흐르는 피를 막은 뒤 요도를 분리하여 카테터를 방광까지 주입하고 요도를 먼저 봉합했다. 미세 현미경을 통해 잘라나간 음경의 동맥과 정맥을 세밀히 연결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1980년 초 뒤늦게 신장 이식 수술을 배워보겠다고 유학길에 올랐을 때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낯설기만 한 미국 땅,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클리닉 실험실. 그곳에서 매일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미세 현미경을 이용한 이식 수술테크닉을 배우면서 기초 연구를 다져나갔다. 수술실은 조그만 쥐의 콩팥을 떼 낸 다음 다른 쥐의 콩팥을 이식해서 거부반응 정도를 일일이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이 항상 흘렀고, 1%의 착오도 허락지 않고 냉혹했다. 그렇게 밤낮없이 연습하고 공부하면서 익힌 기술을 100% 발휘할 기회가 마침내 찾아온 것이다. 직경 1㎜ 미만의 가느다란 동맥과 정맥을 제대로 연결해 주는 일, 그것이 수술의 성패를 가름하는 관건이었다.
동정맥을 잘 이어준 후 백막을 이어주는 것으로 수술이 끝났다. 얼마 후 지혈 붕대를 풀고 보니 음경 빛깔이 불그스레 제 색깔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혈관을 따라 피가 온전히 흐르고 있었다. 1단계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일단 안심했다.
환자를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이 필요했다. 정신병동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그와 연락이 끊겼다. 퇴원한 그의 건강이 궁금해 집으로 몇 차례 전화를 해보았지만 통화를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병원에 나타났다. 5년 만에.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처자식과 함께.
“아! 이 사람, K 군 아닌가?”
“네,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사람 구실하고 살아요.”
“뭐?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고?”
급한 마음에 그를 진료실에 끌고 들어와 어서 그곳부터 보자고 했다. 잠깐 주춤거리던 그는 안심하라는 듯이 한 번 씨익 웃더니 살며시 페니스를 보여주는데, 놀랍게도 몇 년 전 수술한 부위가 깨끗한 모습으로 잘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는 기능도 썩 좋다며 자랑했다. 이 정도라면 의사에게나 환자에게나 큰 사건이다. 주저하는 그를 방사성 동위원소실로 데리고 가서 시청각 자극으로 발기능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피가 정상적으로 소통되고 있었고, 발기 기능도 좋았다.
“정말 기적적인 일이지요. 그것이 잘 서서 그런지, 매사에 의욕이 생기고 데이트할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 진작 보고 드렸어야 했는데, 연애하고 돈 좀 버느라고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다시 뵙는다는 것이 왠지 두려운 생각도 들었고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묻어두고 싶은 아픈 과거를 다시 들춰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드러내고 밝힐 순 없지만 본인으로서는 무척이나 행복했을 테고, 특히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떳떳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흐뭇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