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승 정혜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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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법 상의 의료기기란, 사람이나 동물에게 단독 또는 조합하여 사용되는 기구·기계·장치·재료 또는 이와 유사한 제품으로서 질병이나 장애를 진단·치료 또는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 또는 구조, 기능을 검사ㆍ대체 또는 변형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혈압관리 어플리케이션, 밴드형 체지방 측정기와 같은 개인용 건강관리제품의 대중화, 3D 프린터의 상용화, 인공지능(AI) 기술의 소프트웨어의 개발 등 건강과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기 또는 소프트웨어 등이 다양하게 발전하다 보니 의료기기법의 규제를 받는 의료기기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해야 할지가 문제가 된다.

 

어떤 기준으로 의료기기와 그 외 기기를 구분할까. 의료기기법은 의료기기의 제조‧수입 및 판매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바, 의료기기에 해당하는 경우, 위 모든 절차에 대하여 관련 행정청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규제를 받게 되므로 그 구분 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그 구분 기준과 관련된 최근 대법원 판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건은 체육시설 운영업체가 저주파 자극기를 수입 판매하면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해당 저주파 자극기가 ‘근력 향상과 운동 능력 향상에 효과적’이라고 광고하는 취지의 글을 올린 행위에 대하여 의료기기법 상 금지된 의료기기 광고행위로서 동법 위반의 점이 문제된 사안이다.

 

피고인들은 '저주파기기는 운동보조 기구일 뿐 의료기기가 아니고, 설령 의료기기라고 하더라도 그런 인식을 전혀 하지 못했으므로 의료기기법 위반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저주파기기는 그 객관적 성능에 따라 의료기기법의적용을 받는 '의료기기'에 해당되므로 피고인들의 광고행위는 의료기기법에 위반된다는 원심의 판단을 유지하였다.

 

대법원은, 어떤 기구 등이 의료기기법상 의료기기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그 기구 등이 객관적으로 의료기기법 제2조 제1항 각호에서 정한 성능을 가지고 있거나, 객관적으로 그러한 성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 기구 등의 형태, 그에 표시된 사용목적과 효과, 그 판매 대상과 판매할 때의 선전, 설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위 조항에서 정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입장을 설시하였다. 이를 근거로 해당 저주파기기가 운동 목적으로 제작되어 수입․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객관적인 성능과 원리는 의료기기로 구분된 개인용 저주파 자극기와 다르지 않고, 개인용 저주파 자극기가 가질 수 있는 사용 시 인체에 미치는 잠재적 위해성과 동일한 위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의료기기법상 의료기기의 개념에 해당한다고 해석하였다. 또한 피고인들도 그러한 위해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동법 위반죄의 고의도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포털 지식인 사이트에 답변 글을 게재한 행위는 해당 저주파기기의 광고행위로 볼 수 있으므로 동법 상 금지된 광고행위로서 의료기기법을 위반한 피고인들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였다.

 

다만, 의료기기법 제55조 양벌규정으로 인하여 함께 기소된 피고인 회사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글을 올린 시점이 피고인 회사가 설립되기 이전으로, 회사 설립이 예정되어 있었고 피고인이 회사의 영업을 위하여 한 행위라 하더라도 법인이 설립되기 이전의 행위에 대하여는 법인에게 어떠한 선임감독상의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회사 설립 전의 피고인이 한 행위를 이유로 양벌 규정을 적용하여 법인을 처벌할 수는 없다고 보아 일부 무죄의 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해당 판례를 보면 법원은 일차적으로 기기의 객관적인 성능과 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인체에 미치는 위해성을 파악하여 의료기기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객관적으로 성능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형태나 표시된 목적, 판매 당시의 설명 등을 고려하여 의료기기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람에게 미치는 위해성이 있다면 의료기기법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법원은 입장은 일응 타당하다고 사료된다. 다만 위해성은 그 판단시기, 판단자, 조사 방법, 원리의 복잡성, 구체적 사정 등에 따라 같은 사안에 대하여도 달리 판단될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의견을 근거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기기와 개인용 건강관리제품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의료기기와 개인용 건강관리(웰니스) 제품 판단기준’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기기와 개인용 건강관리 제품을 구분하는 첫째 기준은 표현된 사용목적, 둘째 기준은 위해도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사용목적이 ‘의료용’으로 표현된 경우 당연히 의료기기로 판단하지만, ‘비의료용’으로 표현된 경우는 우선 의료기기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위해도를 평가하고, 그 위해도가 높은 기기에 한해 의료기기로 구분한다. 또한 사용목적 및 위해도는 제조자가 객관적인 의도로 판단하도록 기준을 제시하였다.

 

즉,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건강관리 제품 판단 기준의 일반원칙은 제조자가 의도한 사용목적과 위해도에 따라 판단하는데 비해, 법원은 의료기기법상 의료기기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객관적인 성능과 원리’를 우선하다보니, 위 소개한 사건과 같이 판매자 등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추후 의도치 않게 의료기기법 위반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한 기기들과 소프트웨어들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의료기기 해당성 여부를 하나의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의료기기법의 목적(제1조)을 중심으로, 사람에게 적용하여 질병이나 상해를 치료하고 예방하는데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안전하게 쓰여야 하는 제품들은 의료기기에 해당한다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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