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법 제20조 제5항과 의료법 제33조 제7항은 쌍둥이처럼 유사하게 약국개설등록 불가 장소와 의료기관개설등록 불가 장소를 규정하고 있다. 2000년 7월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의사와 약사 간의 담합행위를 근원적으로 방지할 목적으로 생겼다.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에 일정한 장소적 관련성이 있는 경우 의료기관 또는 약국을 개설하지 못하도록 양 법에 규정을 두었다. 그리고 ‘담합행위의 방지’라는 목적의 정당성을 중시한 행정관청은 의료기관과 동일한 건물 또는 의료기관이 과거에 사용했던 장소를 일부 임차하여 약국을 개설하려고 하여도 약국개설등록 불가 처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법원 2009두4265 판결 이후, 행정관청의 형식적인 판단의 부당성을 다투며 약국개설등록 불가 처분에 불복하는 청구를 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였다. 최근 행정관청의 약국개설등록 불가 처분이 위법하다고 한 판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다툼의 소재가 된 건물은 지하1층 및 지상5층짜리 상가건물이었다. A병원은 지상1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공간을 모두 임차하여 사용하고, 지상1층 중 일부 공간에 안내데스크를 설치한 후 직원으로 하여금 방문객에게 안내를 하도록 하였다. B약사는 지상1층 다른 공간에 약국을 개설하고자 등록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행정관청은 그 장소가 위 약사법 제20조 제5항 제2호가 금지한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인 경우”라 하며 약국개설등록을 불가하는 처분을 하였다. 약국 개설을 못하게 된 B약사는 약국개설등록 불가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은 약국 개설 장소가 약사법 규정이 금지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에 해당하는지는 문언적 의미와 위 법률조항의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법원은 ① B약사가 개설하려는 약국 장소는 A병원의 임차 부분에 속하지 아니하므로 문언적 의미에 포섭되기 어렵고, ② 지상1층은 A병원 안내데스크 외에 편의점 등 각 점포들이 지상1층의 상당 부분 면적을 차지하는 점, 각 점포들이 명확히 구획지어 있고 상호표시하며 영업을 하여 각 독립성을 인식할 수 있는 점 등 점포들의 배치 및 운영 형태에 비추어 일반인이 지상1층을 A병원에 속한 시설 부분이라고 오인할 가능성이 적으며, ③ 지상1층 복도에 있는 A병원 안내데스크에 상주하는 직원은 방문객에게 병원을 안내하는 업무만을 하고 있을 뿐 진료 관련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일반인이 지상1층 복도를 A병원으로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고, ④ A병원 및 이 사건 건물 지상1층 내부에서 약국장소로 곧바로 출입 가능한 통로가 없으므로 B약사가 약국을 개설하려는 장소는 A병원과 공간적•기능적으로 독립된 곳이며 이를 불가처분한 행정관청의 판단은 위법하다라고 판단하였다. 더불어 법원은 병원 방문 환자들의 약국 이용편차 문제는 일반적으로 병원 근처에 위치한 약국들 사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A병원 환자가 주로 같은 건물 내의 약국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이 곧바로 의료기관의 외래환자에 대한 원외조제 의무화에 반한다고 볼 수 없고, 건물 대부분을 의료기관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의 일부에 약국개설등록을 신청하여 행정청이 약국개설등록을 수리하여 준 타 사례가 있었음을 판시하며 약국개설 등록 장소의 공간적‧ 기능적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7. 5. 11. 선고 2017누372173 판결 참조).
위와 같은 법원의 판단은 약사법 제20조 제5항을 문언적으로 명확하게 해석하여 공간적‧기능적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에 의미가 있다. 그동안 위 조항을 근거로 장소적 긴밀성을 형식적으로 판단하여 개설허가 장소의 제한을 두었던 행정관청의 관행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약국 및 의료기관 개설등록 불가 장소에 대한 약사법과 의료법 조항은 의약분업 취지 상 의사와 약사 간에 담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담합이 있는지 여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지, 장소적 긴밀성이 있으면 반드시 답합 행위가 있을 것이라 보고, 같은 건물에 의료기관이 있으면 무조건 약국개설등록 불가 처분을 하는 것은 위법한 행정행위라 할 것이다.
위 판례를 계기로 행정관청이 약국 및 의료기관 개설등록 불가 장소에 대한 약사법과 의료법 조항을 명확하고 실질적으로 해석‧적용하여 줄 것을 기대한다. 보건의료인 당사자 역시 행정관청의 처분이라도 적극적으로 그 적법‧적정 여부를 확인하여 법적인 권리보호를 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