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시행을 앞둔 정신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학계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학계도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개정된 정신보건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전문가들의 신중한 검토 없이 만든 법이라 그대로 시행될 경우 오히려 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정신보건법 대책 TFT위원장(차기 이사장)을 만나 정신보건법 재개정의 필요성과 학회의 활동 계획을 들어보았다.

전세계 탈수용화 추세…개정법은 탈 수용화 막고 있는 꼴

“전 세계적으로 정신질환 환자들의 탈 수용화가 추세입니다. 그러나 탈 수용화를 위한 기반 인프라는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안이 졸속 통과되면서 억지로 규정을 만들다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짜깁기 수준의 법이 되어 버려 오히려 탈 수용화를 막고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번 법안의 핵심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강제입원제도 절차 요건 강화와 입원적합성에 대한 외부 심사체계 도입 등이다. 우선 정신질환자의 입원요건과 관련 기존 법에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입원 필요성이 있는 경우’ 또는 ‘자신의 건강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자·타해 위험)’ 중 1가지만 충족하면 입원요건에 해당됐다. 반면 개정법에서는 2가지 모두를 충족해야 입원이 가능하다. 학회는 이런 기준 때문에 치료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이다.

또한 기존 법에서는 법적보호자 2명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결정으로 입원이 가능했지만, 개정될 법에서는 서로 다른 기관에 소속된 정신과 전문의 2명의 일치된 소견이 필요하다. 정신질환자의 입원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2주의 진단입원 기간을 두고, 이 기간 내에 2차 전문의에 의한 강제입원에 대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또한 개정법에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10-30인 위원으로 구성되어 운영되면서, 월 1회 이상 회의를 하게 되어 있다.

이와 함께 최초 입원 후 치료입원 기간이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시켰고,  또한 입원단계 권리구제 절차 강화차원에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최초 입원 후 1개월 이내에 입원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정신질환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 의료진이 72시간 범위에서 퇴원을 거부할 수 있는 동의입원 제도를 신설했다.

‘개정안, 모법과 하위법칙 짜깁기한 모순투성이’

그렇다면 법안의 어떤 부분들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권 위원장은 우선 “개정 입원조건이 ‘and’가 아닌 ‘or’로 바뀌면서 알코올 중독자, 심한 식이장애환자 같은 경우는 해당이 안 되므로 치료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제가 생기므로 하위시행규칙에는 알코올중독과 같은 질환을 포함시켜 놓아 모법과 맞지 않는 모순적인 짜깁기 규정을 만들어 놨다는 것.

이 뿐만이 아니다. 입원 적합성 심사를 위해 2주 후 다른 전문의가 판단을 하도록 했는데 2주는 너무 길다는 지적이다. 그 사이 환자가 호전될 수도 있고, 또 강제 입원 돼 있는 환자를 2주간이나 기다렸다 또 다시 판단한다는 것도 비합리적인 것. 따라서 “입원 적합성 심사는 2주를 기다리지 말고 72시간 내, 또는 입원하기 전 판단해야 한다”며 “또한 대학병원 평균 입원이 3주인 점을 감안했을 때, 이렇게 입원 적합 판정이 난 환자는 약 4주 정도 치료를 인정해 주고 계속 입원 심사 판단으로 넘어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법에 따르면 72시간까지 강제입원이 가능하고, 2주 이내 2차 전문의 판단 후 1개월 이내에 또 다시 입원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도록 되어 있어 매우 불필요한 행정 절차만 늘어난 것이라는 것.

또한 법적 책임 부분도 문제로 지적된다. 강제입원 환자들은 입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1, 2차 의사 판단이 다를 경우 환자 쪽에서 소송을 걸면 누가 책임을 지는지 불명확하기 때문.

이에 대해 권 위원장은 “실제 외국의 경우 대개 72시간까지 유예 후 의사는 의학적 자문만하고 사법기관이 참여해 입원 판단을 내린다”며 “2주를 기다려 교차 진단하는 것은 법적 책임을 정신과 의사들에게 미루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는 소송에 휘말리지 않게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 일부 지방에서는 서로 신청해서 봐 주자는 담합의 움직임도 있다”며 “결과적으로 오히려 탈수용화를 막고 있는 꼴이 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초기 입원 적합성 심사와 계속 입원심사가 혼재돼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초기 입원 환자는 3개월 후 계속 입원심사를 받는데 이는 기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아닌 또 다른 기관인 정신건강심의위원회가 하도록 규정한 것. “외국의 경우는 초기 입원 심사와 계속 입원 심사의 기준이 같으며, 계속 심사 역시 강제입원을 연장하는 것이니 처음 입원적합성심사와 같은 방식이라야 환자 인권이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계속 입원 심사도 초기 입원 심사와 똑같은 법적 책임을 가진 기관에서 판단해야 하는데, 행정 절차만 복잡하게 해 놓아 환자 측에서도 이를 알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지역 케어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입원 환자 중에는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안타나 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병원을 나올 경우 적절한 케어를 받지 못하고 교정시설이나 요양시설, 기도원 등을 전전하게 되어 인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개정법이 순기능을 하려면 지역 케어시설 인프라 마련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복지부 부당 압력 대처 ‘회원 행동강령’ 배포…자정작용도 강화

학회는 현재 회원 행동강령을 만들어 회원들에게 고지를 한 상태이다. 부족한 2차 진단 전문의 확보를 위해 복지부가 민간 의사들의 참여를 부당하게 압력 하는 경우가 있으면 신고를 받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권 위원장은 “이대로 5월 30일 법이 시행될 경우에는 ‘원칙’대로 한다는 방침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며 “모법 기준이 있는데 하위법칙에 모법에 맞지 않는 규정을 넣어놨으므로 이 자체가 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말이 안 되는 법이라 완전히 문제가 되는 한두 개 규정만이라도 고쳐서 시행하고, 추후 학회, 환자 단체 등이 모여 환자의 인권보호는 물론이고 보호자의 고통을 줄이는 완전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임기를 시작하는 권 이사장은 학회 스스로도 자정작용을 강화할 방침이다. 현재 학회 윤리위원회에서 회원 윤리 규정을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사회봉사나 활동과 사회적으로 환자들의 낙인 없애는 홍보 등도 한층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저작권자 © e-의료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