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캄보디아의 깜폿시를 찾은 한국 의료봉사단에 남자 아이와 엄마가 찾아왔다. 엄마는 소년과 함께 깜폿시에서 150km 떨어진 프놈펜 썽갓 믄체이에서 버스를 4시간 타고 이곳까지 왔다고 말했다.

숨이 차 힘들어하는 소년은 엄마 뒤에 숨어서 한국 의료진들이 신기한 듯 힐끔힐끔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엄마는 소년이 심장병을 앓고 있다며 의료진에게 낫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2살 때 심장병이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아이가 아플 때마다 동네의원에 가서 약만 받아서 먹고 특별한 치료는 못했어요. 큰 병원에서는 수술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계속 미루고만 있었어요.”

한국 의료봉사단 중 한 명이었던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김영휘 교수는 심장초음파를 통해 소년이 심실중격결손증의 심장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김영휘 교수는 수술을 위해 소년의 한국행을 결정했다.

캄보디아 소년 벤 쏘지읏(10세)과 한국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쏘지읏의 아버지는 공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월소득 80불의 수입으로 가정을 꾸려 나갔다. 그나마 청소 용역일을 하며 벌이를 했던 어머니는 쏘지읏의 간병을 위해 3년 전 퇴직했다.

캄보디아의 프놈펜 썽갓 믄체이 프레이따꿍의 외곽에 위치한 나무집에서 살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온 이들은 쏘지읏의 수술비 4천 불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가수가 꿈인 쏘지읏은 캄보디아 가수 쓰레이 문을 좋아해 노래를 곧잘 따라하며 춤도 잘 췄다. 하지만 아픈 몸은 항상 쏘지읏의 꿈을 가로 막았고, 그런 아들을 볼 때면 어머니 옷 소티어리(30세)는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쏘지읏이 다니는 학교는 집에서 7km 정도 떨어져 자전거를 타고 가야만 했어요. 그런데 자전거를 조금만 타도 숨이 차서 너무 힘들어했어요. 4년 가까이 학교를 다니면서 한달에 일주일은 학교를 못갔어요. 수술만이 방법이라고 하는데, 손 놓고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어요.”

경제적 어려움과 열악한 의료 환경 등의 이유로 심장병 치료를 받기 힘들었던 캄보디아 아이들은 쏘지읏만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프놈펜을 찾은 김영휘 교수는 의료봉사활동에서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30여 명의 아이들을 진료했고, 이들 중 수술이 시급한 5명을 서울아산병원에 초청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병을 가지고 있었던 5명의 어린이, 벤 쏘지읏(Ben Socheat 남/10세), 쏙 비슷(Sok Piseth 남/1세), 탄 소티어(Than Sohtea 남/4세), 쏘콤 끄리스다(Sokhom Christa 남/9세), 뚜잇 쓰레이네(Touch Srey Ne 여/1세).

폐동맥협착, 심실중격결손, 팔로4징후 등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던 아이들은 수술은 커녕 제대로 된 약도 구하지 못해 아픈 심장을 가진 채 커왔다.

이들 가정의 한 달 수입은 대개 80불도 채 되지 못해 수술비 4~5천 불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심장수술을 하는 병원이 단 한 곳에 불과한 캄보디아의 열악한 의료환경 상 이들이 건강하게 심장 수술을 받고 회복할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10월 8일 한국으로 입국 후 서울아산병원으로 바로 입원한 아이들은 9일부터 13일까지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외과 윤태진 교수, 박천수 교수로부터 심장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4명은 사흘 후 22일(월) 퇴원해 캄보디아로 귀국 할 예정이다.

뚜잇 쓰레이네는 당초 방실중격결손증의 심장병을 앓고 있었지만 병원에서의 정밀검사 결과 기능적 단심실과 폐정맥환류이상의 복잡한 심장 기형이 확인되어 큰 수술이 진행되었고 일주일 후 퇴원할 예정이다.

이들 모두의 심장병 수술비를 포함한 치료비는 서울아산병원과 한국심장재단이 지원할 계획이다.

퇴원을 나흘 앞둔 날 병실에서 만난 쏘지읏은 한국 날씨는 춥다며 점퍼를 입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겨울까지 한국에서 지내고 싶어요. 하얀 눈도 보고 눈 싸움도 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좋아하는 컵라면도 실컷 먹고 싶구요. 그래도 빨리 캄보디아에 가서 동생이랑 프놈펜에 있는 드림랜드 놀이동산에 가고 싶어요. 그리고 이젠 노래도 맘껏 부르고 가수도 꼭 될거에요.”

쏘지읏의 어머니 옷 소티어리(30세)를 만나자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기쁘다며 두 손 모아 인사했다.

“10년 가까이 수술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기회를 주시니 고맙고 또 고마워요. 평소 잘 알지 못했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수술을 해 주다니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 기뻐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6년 째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시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김영휘 교수는 “가난과 빈곤,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선천성 심장질환을 치료 받지 못해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매우 많다. 선천성 심장병의 경우 조기 진단 및 치료를 받는다면 완쾌도 가능한데, 저개발 국가의 아이들은 수술 시기를 놓치는 등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일년에 한번 씩은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김영휘 교수는 앞으로의 구체적인 방안도 말했다.

“무엇보다 저개발 국가의 현지 병원이 치료 환경을 갖추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심장병 환아들을 현지에서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어, 현지 치료가 가능하게 끔 노력하고자 한다. 수술시설 지원과 현지 의료인 교육 등 근본적인 도움을 주고자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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